조향미 세번째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부산의 시인 조향미(45·문현여고 교사)씨가 세 번째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실천문학사)를 펴냈다.
“그만 모든 것 내던지고 싶은 이 만신창이 별에서/숲은 무슨 배짱인지 또 거뜬히 봄을 시작한다/참, 환장하겠다”(〈상림의 봄〉 부분)
함양 상림의 늙은 나무들에게도 신생과 부활에 대한 열망이 있을까. 있을 수 없으리라고, 시인은 지레짐작했댔다. 겨울에 본 숲은 “지치고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수긍했다. 세상은 한마디로 “만신창이”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세상에, 그 늙은 나무들이 “무슨 배짱인지 또 거뜬히 봄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환장하겠다”는 탄식은 항복이자 예찬의 말씀일 터.
〈상림의 봄〉은 시인이 세상을 보는 태도를 알려 준다. 그 바탕에는 비관이 깔려 있다: 세상은 엉망진창이다. 그런데 비관이라는 암반 위에는 희망과 낙관이란 말랑말랑한 토양이 덮여 있다: 세상은 개판이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한 가치는 있다. 그러니까 비관 위의 낙관, 비관을 포위하고 있는 낙관이다. 그래서 시인은 너그러워진다. 어둠과 모기에게도 그 나름의 몫을 기꺼이 부여한다.
“잠 안 오는 깊은 밤엔/시집 한 권 읽을 만큼/둥글고 부드러운 불빛 켠다/곁에서 어둠은 어둠대로/순한 짐승처럼 쌔근쌔근 엎드려 잔다”(〈촛불〉 부분)
“물린 자국이 그 작은 몸집의 몇십 배는 되겠다/손가락으로 긁적거리다가 손톱으로 꼭꼭 누르다가/물린 팔뚝을 가만히 바라본다/당연하지 않은가/한 존재의 흔적이 이만큼도 안 될 수 있으랴”(〈흔적〉 부분)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일, 자신을 비우고 남을 채우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젊음은 교만으로 치닫기 쉽고 늙음은 노염을 부르기 십상이다. 중년의 시인은 젊음의 열정과 노년의 지혜를 두루 긍정한다.
“이런 봄밤에 잠이나 잘 수 있느냐고/제 속을 활짝활짝 열어제끼는/바람난 젊은 것들”(〈산벚꽃〉 부분)
“며칠 지나도 헐렁한 쓰레기통/죄를 덜 지었다는 증거다/가을볕에 잘 마른 무명수건처럼/제법 깔깔해진 마음으론/물기 젖은 누구의 얼굴을 닦아주고도 싶다”(〈예금통장〉 부분) 시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이 터질 듯한 향유(享有)가 없다면/상처와 죽음이 어이 있으랴”(〈태풍 지나가고〉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며칠 지나도 헐렁한 쓰레기통/죄를 덜 지었다는 증거다/가을볕에 잘 마른 무명수건처럼/제법 깔깔해진 마음으론/물기 젖은 누구의 얼굴을 닦아주고도 싶다”(〈예금통장〉 부분) 시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이 터질 듯한 향유(享有)가 없다면/상처와 죽음이 어이 있으랴”(〈태풍 지나가고〉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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