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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두천과 만석동 닮은꼴 발견했죠”

등록 2006-08-24 19:08수정 2006-08-25 14:49

자랄 때 지켜본 동두천 혼혈아 만석동 이주노동자 삶과 같은 뿌리
“우리 사회 지탱하는 것은 그들” 아이들에겐 할 수 없는 말 소설로
인터뷰/첫 소설 ‘거대한 뿌리’ 낸 김중미씨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동화작가 김중미(43)씨가 첫 소설 <거대한 뿌리>(검둥소)를 내놓았다. 작가가 성장기를 보낸 동두천 미군기지 주변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소설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무대였던 인천 만석동으로 짐작되는 ‘I(아이)’시 ‘M(엠)’동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 ‘나’가 떠나온 지 26년 만에 동두천을 다시 찾아 그곳에서의 일들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프롤로그에서 화자인 주인공은 1987년에 ‘엠’동에 처음 왔을 때 그곳이 이상하게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찻길이 지나고 빛바랜 슬레이트와 루핑 지붕을 얹은 판잣집들이 즐비한 그 동네에서 60~70년대의 동두천을 보았던 것이다. 동두천의 기억과 만석동의 느낌은 그대로 작가 자신의 것이었다.

“어릴 적 동두천에서 만났던 양공주들과 혼혈아들의 삶이 만석동을 비롯한 이 땅의 변두리 곳곳에 살고 있는 빈민·이주노동자 들과 한 뿌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국내외적으로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이들의 자리는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지만, 결국 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이들이라고 믿습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오랜 세월이 지나 동두천을 다시 찾게 된 계기가 있다. ‘엠’동의 이웃집에서 성장한 ‘정아’가 이주노동자를 만나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된 것. 동두천 시절 혼혈아들이 받는 차별과 서러움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주인공은 정아가 “아무런 미래도 없는 이주노동자랑 연애하고, 그래서 스물둘에 덜컥 임신을 해서 애 엄마가 되”려는 데에 반대의 뜻을 밝힌다. 그에 대한 정아의 항변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새삼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아무 미래도 없는 이주노동자라니요?(…) 선생님 친구처럼 이주노동자를 돕는 활동가는 괜찮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갖는 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도대체 뭐가 달라요? 선생님도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정아의 말에 등 떠밀리다시피 찾아간 동두천에서 주인공은 그동안 애써 잊고 있었던 어릴 적 기억들과 마주친다. 미군의 폭력 앞에 벌레처럼 움츠러들어 떨던 양공주들, 몸을 팔아 가족들 건사하고 남동생들 학비를 대면서도 가족들의 반대로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하는 ‘미자 언니’, 그럼에도 결혼과 입양 등의 방식으로 ‘꿈의 나라’ 미국으로 갈 수 있기만을 염원하던 사람들, 친구와 선생님에게 따돌림 당하다가 엇나가는 혼혈 친구…. 특히 주인공의 첫사랑이기도 했던 백인 혼혈 ‘재민이’가 퍼붓듯 쏟아놓은 말은, 지금 정아의 말이 그렇듯이, 주인공의 양심을 아프게 때린다: “도대체 튀기가 뭐 어쨌다는 거야? 물건은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왜 우리 같은 애들은 싫어해? 나도 반쪽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제야. 그리고 나머지 반은 너희들하고 똑같다고. 도대체 왜 우리가 너희들한테 무시를 당해야 하냐고, 왜?”

“소설 주인공 정원이처럼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인천으로 이사 와서 했던 생각이 ‘미군이 없는 도시도 있구나’ 하는 거였어요. 90년대 이후 보게 된 이주노동자는 저에게는 ‘새로운 충격’이었죠. 어릴 때 보았던 아메리칸 드림이 코리안 드림으로 옷을 바꿔 입은 꼴이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동두천은 저에게 삶을 풀어가는 열쇠이자 바탕인 셈입니다.”


만석동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는 등 지역운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출판사 창비의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데 이어 문화방송 텔레비전 프로그램 <느낌표>의 추천도서로 선정되면서 김씨는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됐다.

“한동안 만석동에 취재진은 물론 독자들까지 찾아와서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하는 통에 힘들었어요. 주민들께 죄송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입니다.”

작가는 지금은 강화도에 살며 1주일에 두 번 정도씩 만석동을 오가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할 수 없는 말이 있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그는 병역거부자를 주인공 삼아 폭력과 평화의 문제를 다루는 소설을 다음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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