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위안부, 통일신라→남북국시대, 월남→월남·납남 구분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던 조선인 여성을 일컫는 말은? 일본군 ‘위안부’가 정답이다. 한때 통용됐던 정신대라는 용어는 강제노동에 동원된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이다. 중요한 것은 위안부의 앞 뒤에 홑따옴표를 써야 한다는 점이다. 즐거움을 준다는 뜻의 위안부는 군국주의 일본과 남성중심적 표현이다. 홑따옴표는 위안부 노릇을 강요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는 장치다.
이처럼 여러 역사용어들은 사소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역사용어 바로쓰기>(한정숙 외 지음·역사비평사 펴냄)는 모두 40개의 역사용어를 정리하면서 이 문제와 대면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책에서 “바른 이름을 갖기 위한 노력은 역사적 실천이며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고 썼다.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모두 35명의 지식인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논쟁적 용어들을 되짚었다. 일부 학자들은 잘못된 역사용어를 바로잡을 것을 적극 제안했다. 임나일본부설에 위축받아 가야를 수세적으로 해석한 결과인 ‘삼국시대’ 대신 고구려·백제·신라·가야를 시야에 올리는 ‘사국시대’가 올바르다는 지적(김태식 홍익대 교수)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흔히 ‘삼국시대’로 불리는 기원전 1세기부터 668년까지 대부분의 시기에 ‘사국’이 함께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6·25전쟁 대신 한국전쟁(박명림 연세대 교수), 통일신라시대 대신 남북국시대(송기호 서울대 교수), 신사유람단 대신 1881년 일본시찰단(이이화 서원대 석좌교수), 한일합방조약 대신 한국병합늑약(이태진 서울대 교수) 등을 쓰자는 제안이 뒤잇는다. 이유와 근거는 다양한데, 역사의 한 측면만 강조해온 식민사관·반공사관 등의 잔재를 극복하자는 뜻과 대체로 관련이 있다. 이념적 편견없이 역사적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역사용어부터 바로 잡자는 이야기다.
혼용·혼재돼 쓰이고 있는 여러 역사용어의 차이를 짚어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은정태 대림대 강사는 의사와 열사라는 용어를 살폈다. 성리학적 의리관이 담긴 ‘의열지사’에서 비롯된 두 단어는 애초 뚜렷한 구분없이 쓰이다가, 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을 ‘열사’로 부르는 쪽으로 변모했다. 반면 중국이나 북한은 ‘의사’라는 용어는 아예 쓰지 않고 ‘열사’만 사용하고 있다.
백성·평민·민중이라는 용어의 역사성을 시대적으로 구분하거나(정창렬 한양대 명예교수), 기독교적 형제애를 표현하는 용어였던 동포가 정치적 주체를 불러내는 용어로 바뀐 과정을 살피는(김동택 성균관대 연구교수) 대목도 재밌다.
특히 이신철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납북과 월북은 구분하면서도 ‘납남’이라는 용어 없이 모든 경우를 ‘월남’이라 표현하는 역사 인식의 공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 교수는 “월북자를 배신자, 빨갱이로 몰고 남쪽으로 넘어온 사람은 모두 자발적 월남자로 보는 시각이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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