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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0대들만의 숲속 ‘혁명 공화국’

등록 2006-08-31 19:14수정 2006-09-01 14:38

나무 공화국<br>
샘 테일러 지음. 이경식 옮김. 김영사 펴냄. 9900원
나무 공화국
샘 테일러 지음. 이경식 옮김. 김영사 펴냄. 9900원
네 명의 십대 소년·소녀가 깊은 숲속에 들어가 ‘혁명’을 거쳐 ‘독립국가’를 건설한다. 이름하여 ‘나무공화국.’ 독립선언서도 채택했으니, 이러하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고 잘난 사람들은 모두 남의 불행을 즐기는 미친놈들이며 거짓말쟁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길 원한다. 잘 있거라, 잔인한 세상이여!”(231쪽)

영국의 젊은 작가 샘 테일러(36)가 지난해 내놓은 처녀작 <나무 공화국>은 아이들 특유의 모험심과 기발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프랑스의 한 마을에 살던 영국계 아이들 네 명이 어느 해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미셸과 그의 형 루이, 이웃에 이사 온 알렉스와 그의 누나 이소벨이 그들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며 꿈꾸던 모험을 실행에 옮긴 셈. 아이들은 산을 오르고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가는가 하면 개울과 벌판을 건너서는 마침내 반원형 굴 안의 폐허가 된 집을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한다. “초록의 나날들, 우리의 순수한 나날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52쪽)

소년다운 순수와 낭만으로 출발한 이들의 모험은 그러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생각하는 미셸에게 그의 형 루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들이민다. 법률이 선포되고, 루이가 국왕으로 등극하며, 구성원들은 서로를 평등하게 ‘시민’으로 부르게 된다.

혁명과 정치가 제 자리를 지킬 수만 있어도 그나마 견딜 만했을 것이다. 아이답지 않은 ‘치정’이 개입되면서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루이와 알렉스가 동성연애에 빠져드는 동안 미셸은 연상의 이소벨과 파트너가 되어 황홀한 감각의 향연을 펼친다. ‘조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다섯 번째 시민으로 등장하면서 그간의 균형은 무너지고 균열과 붕괴가 시작된다. 조이는 미셸에게, 이소벨과 루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고자질하면서 이소벨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다. 이소벨은 ‘혁명 놀이’에 싫증이 나서 이탈하려다가 배신자로 찍혀 재판정에 서고, 장난 삼아 마당에 설치해 둔 기요틴은 쓸모를 찾는다…. 끔찍한 살육극이 펼쳐지고 나서 미셸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387쪽)고 토로하는 소설의 결말은 유토피아의 꿈이 디스토피아의 환멸로 몸을 바꾸는 끔찍한 과정을 생생하게 증거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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