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image/s3,"s3://crabby-images/ce6f7/ce6f7aacdc37055cdbcbc674ea32f1241ce6fd0e" alt="디아스포라의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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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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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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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디아스포라’는 고대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유대인의 민족적 이산을 뜻하는 말이었다. 근래에 들어 이 말은 ‘제3세계’의 본국을 떠나 ‘제1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몸은 제1세계 안에 있지만, 언제나 그 세계에서 ‘타자’로 인식되고 그 자신도 자기를 타자로 의식하는 것이 이 디이스포라의 특징적 상황이다. 디아스포라는 특히, ‘포스트콜로니얼리즘’(포스트식민주의)과 관련해 많이 논의된다. 레바논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에드워드 사이드나 인도 출신으로 역시 미국에서 활동하는 가야트리 스피박이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은 제1세계에서 제3세계를 연구하는 지식인집단의 복합적인 문제상황을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처지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책이다.
지은이 레이 초우가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지식인이다. 그는 1957년 홍콩에서 태어나 그곳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가 표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포스트식민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문제지만, 본질적으로는 지식인에게 늘상 문제가 되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 문제다. 제1세계에도, 제3세계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는 어중간한 위치에 선 지식인으로서 그가 자주 목격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에 갇힌 제1세계 지식인’이라는 하나의 전형과,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면서 제3세계 토착주의에 빠진 지식인’이라는 또하나의 전형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이 두 전형이 겉으로는 대립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본다. 앞의 경우가 제국주의에 직접적으로 봉사한다면, 뒤의 경우는 제3세계를 희생자로만 봄으로써 그 내부의 복잡한 문제를 누락시키고 그리하여 제3세계의 내부 문제를 해결할 길을 봉쇄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관점이다.
여기서 지은이의 시선이 더 예리하게 꽂히는 지점은 제3세계 토착주의를 찬미하는 지식인이다. 그들이 문제인 것은 몸은 제1세계의 자본주의 혜택에 흠뻑 젖어 있으면서 의식만 제3세계 토착주의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서구 문명을 비판하는 도구로 비서구의 토착문화를 찬양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또다른 오리엔탈리즘이다. 이를테면, 중국의 ‘마오주의’에 대한 찬양이 그것이다. 마오주의를 서구의 부패한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 떠받들었던 그들은 중국 인민의 가난과 궁핍조차도 서구 문명에는 없는 정신적인 고귀함의 한 증거로 내세웠다. 마오주의가 낳은 구체적인 해악의 문제는 이들의 관념적인 동양 찬미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그런 식의 ‘제3세계주의적 환상’이 그것을 유포하는 그 지식인 자신의 지적·문화적 권력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제1세계로부터 착취당하는 제3세계와 ‘말로만’ 동일시함으로써 도덕적 권위도 얻고 또 거기에 기초해 지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이렇게 타인의 불행으로부터 자신의 특권을 끌어내는 지식인은 제1세계 백인 지식인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제3세계 출신임을 앞세워 그 약점을 오히려 도적적 강점으로 바꿔치는 디아스포라 지식인에게서도 이런 자기기만은 자주 발견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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