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뱀
베르나르 뒤 부슈롱 지음. 성귀수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8800원
베르나르 뒤 부슈롱 지음. 성귀수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8800원
2004년도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은 소설 <짧은 뱀>은 작가가 76살의 고령에 발표한 첫 소설이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작가 베르나르 뒤 부슈롱은 평생을 산업분야에서 일해 온, 문학과는 별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갈리마르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는 해마다 이 출판사에 답지하는 1만여 건 가운데 한 편이었을 뿐이다. <짧은 뱀>은 14세기를 배경으로, 그린란드로 추정되는 북국 동토의 타락한 기독교도들을 교화하고자 파견된 주교의 보고서 형식을 취한다. ‘짧은 뱀’은 그들이 타고 간 배의 이름. “불신앙의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주민들을 다시금 신앙의 빛 가운데로 나오게 하려는 주교 일행은 악전고투 끝에 현지에 도착하지만, 거기서 그들이 보는 것은 불신앙의 어둠 이전에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추위와 굶주림이었다. 작가는 매우 치밀한 고증을 통해 동토의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인육과 분비물을 먹어야 할 정도로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들이미는 교회권력의 무능과 부패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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