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의 역습
스티븐 존슨 지음. 윤명지·김영상 옮김. 비즈앤비즈 펴냄. 1만3000원
스티븐 존슨 지음. 윤명지·김영상 옮김. 비즈앤비즈 펴냄. 1만3000원
TV드라마는 복잡해지고 컴퓨터 게임은 정교해지고
대중문화는 점점 더 머리를 쓰게 만든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의 도발적인 대중문화 ‘옹호론’
대중문화는 점점 더 머리를 쓰게 만든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의 도발적인 대중문화 ‘옹호론’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라는 것은 상식이다.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면 사회성이 나빠진다는 것도 상식이다. 부모들은 이런 상식을 근거로 아이들을 압박한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 아이와 이를 막아서는 부모 사이에는 매일처럼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지혜는 상식을 뒤집는 데서 비롯된다. <바보상자의 역습>은 그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새로운 지혜를 제공한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이 바보상자가 아니라 ‘두뇌 훈련소’라고 말한다. 실은 이 주장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게임하면 아이큐(IQ)가 좋아진대.” “텔레비전 보면 공부가 더 잘된다니까.” “엄마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하지 말래, 쳇.” 아이들이 항변하는 내용의 대강이 이와 같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라도 배운 사람이 하면 조금 다르다. 지은이 스티븐 존슨은 미국 뉴욕대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하면서 여러 베스트셀러를 써낸 지식인이다. 저널리즘, 신경과학, 정보기술, 커뮤니케이션이론 등을 동원해 텔레비전, 인터넷, 컴퓨터 게임 등이 어떻게 인간의 두뇌활동을 증진시키는지를 용의주도하게 분석했다. 그가 보기에 텔레비전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는 “매년 더욱 정교해지고 더욱 고난도의 인지활동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일은 “젊은 세대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세뇌”가 됐다.
이쯤되면 도발적인 주장의 근거가 궁금해진다. 우선 컴퓨터 게임을 보자. 어지간한 시뮬레이션 게임은 그 사용법을 정리한 해설서가 몇백 쪽에 이른다. 여러 사용자들이 인터넷 등에 올린 ‘게임 주석’은 그보다 더 방대하다. 게임 규칙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기에 며칠씩 몰두한다. “수학숙제를 하게 하려면 방에 가둬야 하고, 집안일을 돕게 하려고 외출금지를 해도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군말없이 게임에 몰두할까?” 존슨은 “일상과 달리 게임에서는 더 크고, 더 생생하고, 더 명확하게 정의된 보상으로 가득 찬 가상세계를 제공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 보상을 위해 아이들은 복잡한 두뇌 게임에 몰입한다.
존슨이 착안하는 것은 게임 속의 ‘보상’이라는 미끼를 통해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건져올리는 ‘두뇌 체조’라는 수확물이다. 사람들은 흔히 대중문화가 던진 그 미끼가 천박하고 폭력적이고 외설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고, 오히려 두뇌 체조라는 결과물에 비해 부수적이며, 대중문화를 통한 두뇌 훈련을 다른 방법을 통해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의 결론은 간단하다. 이처럼 유익한 것을 왜 백해무익하다고 말하나?
두뇌게임 몰입은 보상 크기 때문
예컨대 현대의 컴퓨터 게임은 “근본적 작동원리를 고민하게” 한다. 적극적 사고와 분석을 촉진하고, 시뮬레이션의 환경을 이해하기 위한 두뇌 노동이 전면화된다. 컴퓨터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게임의) 질서와 의미를 찾아내고 그 질서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80년대 이후 드라마는 한 편의 에피소드에 10여개 이상의 이야기를 동시에 풀어낸다. ‘이아르(ER)’ ‘위기의 주부’ 등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미국 드라마들은 난해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시청자를 암흑 속에서 헤매게 하는 것이 드라마 제작자의 의도”다.
현실 인물의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도 마찬가지다. ‘서바이버’ ‘어프렌티스’ 등의 리얼리티 쇼는 끝없이 새로운 도전과 과제가 주어지고 이를 통해 게임의 법칙을 알아가는 컴퓨터 게임에서 직접적인 힌트를 얻었다. 리얼리티 쇼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구축하는지를 다루는 게임”이다. 영화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은 어떤가. 두 영화는 거의 동일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지만, 등장인물은 거의 네 배 이상으로 늘었고, 각 인물 사이의 관계도 중층적으로 변했다. 어른도 기꺼이 즐길만큼 여러 정보를 숨기고 있는 ‘니모를 찾아서’를 보고 나면, ‘라이온 킹’은 말 그대로 아이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반복시청 장치 늘어나 복잡성 증대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복잡성이 증대한 데는 경제적 이유도 있다. 갈수록 ‘재방송’ 시장이 더 큰 돈이 된다. 케이블채널, 디브이디(DBD), 주문자 맞춤형 채널에 이르기까지 ‘반복시청’의 장치가 늘어났다. 이제 대중문화 텍스트는 “관객의 눈을 처음부터 사로잡는 것보다는 여러번 볼 때까지 시선을 고정하게 하는 것으로 궁극적 목표가 바뀌었다.” 반복시청을 감당할 수 있는 프로그램만이 살아남게 된 이상, 거듭 봐야할 매력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대중문화 텍스트의 복잡성과 불가측성, 중층성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현대의 드라마, 시트콤, 리얼리티쇼, 헐리우드 영화 등을 보려면 “복잡한 인간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고, 집중하다 보면 사회적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뇌의 특정부위가 활성화된다.”
남은 의문이 있다. 두뇌 훈련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한다 해도, 이런 대중문화가 전하는 ‘해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 그것 가운데 일부는 폭력적이고 외설적이고 비윤리적이다. 존슨의 대답은 이렇다. “당신은 수학문제의 지문이 문학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에 수학문제를 푸는가?” 그가 요구하는 것은 대중문화를 평가하는 잣대의 변화다. 존슨이 보기에 게임, 드라마, 시트콤 등이 담고 있는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 수학 문제 자체가 아니라 수학을 푸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두뇌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복수와 테러에 관한 (잔혹한) 드라마일지라도, 이를 통해 시청자가 배우는 것은 (잔혹성과 거리가 먼) 인간관계(의 중층성)이다.”
존슨은 “그렇다고 아이들이 무엇을 하건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무엇이 두뇌를 살찌우는지 결정하는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중문화를 사갈시하는 태도로는 두뇌 훈련의 매혹적인 공간에 대한 아이들의 애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설정을 이렇게 바꾸면, 부모들의 과제는 달라진다. 좋은 수학 교과서를 고르듯이, 더 많은 ‘두뇌 활동’을 돕는 좋은 드라마·시트콤·컴퓨터게임을 골라야 하는 것이다.
존슨의 설명은 매력적인 동시에 논쟁적이다. 인간과 사회의 중층성을 이해하며 치열하게 두뇌를 단련시켜 탁월한 창의성과 사회성을 갖춘 젊은 세대들이 현실의 공동체를 보다 나은 것으로 바꾸는 데 그 능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줄 수 있다면, 이 책은 새로운 관점의 ‘의식화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어른들의 걱정은 늘어난다. 그러나 <바보상자의 역습>은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 고도의 두뇌활동을 펼치며 지각능력, 창의성, 사회성 등을 기른다고 설명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