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들이 15일 오전 이 대학 백주년기념관에서 ‘인문학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고려대 사진제공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 ‘인문학 위기 극복 선언문’ 발표
시장논리 밀려 존립조차 위협
세계화할수록 인문정신 필요
방법론 확장 체질개선 다짐도
시장논리 밀려 존립조차 위협
세계화할수록 인문정신 필요
방법론 확장 체질개선 다짐도
대학교수들이 인문학 위기 극복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해 발표했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은 15일 오전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문과대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인문학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에는 문과대 교수 117명 전원이 참여했다. 인문학자로서의 성찰과 함께 인문학의 부활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현직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수들은 선언문에서 인문학의 위상에 대해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내렸다. 곧이어 인문학 위기의 실체와 관련해 “무차별적 시장 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 때문에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학의 상업화로 말미암아 연구 활동과 교육 행위마저 계량적 평가의 대상과 상업적 생산물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위기 진단에 뒤이어 교수 사회 내부를 향한 반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우리 인문학자들은 시대 상황의 구조적 변화가 갖는 공동체적 함의를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복잡다기한 사회 현실의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참신한 학제간 연구 방법론의 개발에 소홀했으며,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수요가 반영되도록 인문학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역설적이게도 인문학의 미래는 시장 논리를 앞세운 세계화와 관련이 깊다. 교수들은 “세계화의 급류 속에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을 해소하고 평화적 공존과 문화적 다양성에 입각한 국제 사회의 건설을 위해 어느 때보다 인문정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앞으로 인문학이 걸어가야 할 방향에 대해선 “잘못된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 정신과 더불어 풍요로운 삶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창조 정신을 고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신자유주적 대학 재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고려대에서 인문학 교수들이 앞장서 이번 선언문을 채택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조광 고려대 문과대학장(한국사학과)은 “인문학이 빈사 상태에 빠지면 우리 사회의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약속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고 산업 분야에서의 경쟁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인문학에 대한 교수들의 책임과 이를 진흥시키기 위한 결심을 담은 이번 선언이 한국 인문학계의 학문적 선언의 효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문과대는 이날 선언문 발표에 이어 창립 60주년 기념 연쇄 학술대회를 시작했다. ‘자유·정의·진리, 시장근본주의를 넘어서’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는 15일에 이어 10월13일, 10월27일에 걸쳐 대학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참가 문의는 (02)3290-1065.
한편, 오는 26∼27일 한국학술진흥재단과 전국 인문대학장단은 이화여대에서 ‘열림과 소통으로서의 인문학’을 주제로 ‘인문주간’ 첫 행사를 열고 전국 인문대학장들이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된 선언과 인문대학장협의회 구성을 논의할 예정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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