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 년 전에 부친 편지-능소화
조두진 지음. 예담 펴냄. 9000원
조두진 지음. 예담 펴냄. 9000원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지난해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조두진(39)씨가 두 번째 장편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 능소화>를 내놓았다. 1998년 경북 안동에서 무덤을 옮기던 중 발견한 400년 전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 삼아 조선조 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소설로 그렸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저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당신은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잊으셨나요? 그런 일을 잊지 않으셨다면 어찌 저를 버리고 그렇게 가시는가요?”
‘원이 아버지에게 -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편지는 젊은 나이에 먼저 죽은 지아비에게 보내는 지어미의 글월이다. 400여 년의 세월에도 아랑곳없이 원형 그대로 발견된 편지는 부부 사이의 살가운 정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무덤 주인인 편지의 수신인은 1586년 서른한 살 나이에 요절한 고성 이씨 이응태로 확인되었다. 편지를 쓴 부인의 이름과 생몰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작가는 부인의 이름을 ‘여늬’라 짓고 응태와 여늬 사이의 슬픈 사랑을 여름꽃 능소화에 빗대어 그린다. 소설 속에서 능소화는 처음엔 ‘소화’라 불렸다. 양반댁에만 심을 수 있었는데, 본래 하늘 정원에 있던 꽃을 누군가가 훔쳐서 땅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하늘 정원 지킴이인 ‘팔목수라’는 여늬를 범인으로 지목해 그의 운명에 불리하게 개입해 들어온다. 유난히 금슬이 좋던 지아비 응태를 성급하게 하늘로 데려간 것이 바로 팔목수라의 짓이었다. 이에 여늬는 꽃이름을 ‘이길 능’ 자에 ‘하늘 소’ 자를 쓰는 ‘능소화’로 바꿈으로써 죽음으로도 끊을 수 없는 부부의 사랑을 강조하고자 한다.
<도모유키>에서 정유재란기 왜군 하급장교와 조선 여인 사이의 사랑을 그렸던 작가는 새 소설 <능소화>에서 다시금 400년의 세월을 거슬러올라간다. 또 한 번 ‘역사 속의 사랑’을 다룬 것인데, 사랑의 매혹과 불길한 운명에의 예감이 함께 들어 있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묘사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돌담 너머로 고개를 내민 소화의 붉은 꽃잎을 먼저 보았을까, 희디흰 얼굴을 먼저 보았을까. 아니면 검고 큰 눈과 마주친 것이 먼저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옻칠을 한 듯 검은 머리카락을 먼저 보았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시들지 않고 송이째 떨어져 땅바닥에 뒹구는 소화 꽃송이를 본 것이 먼저였나.”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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