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래는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전 통일부 장관)이 29일 열린 ‘한반도 갈등, 어떻게 풀 것인가’ 학술회의/제1부 ‘남북갈등 해결의 길’에서 발제한 내용이다.
[발제문 요약]
햇볕정책(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한 점에서 평화번영정책도 햇볕정책으로 통칭)은 분명 이전 정부들의 대북정책과 패러다임을 달리하는 정책이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는 안보에 주력하는 대신 남북관계에는 기계적 상호주의를 적용하면서 방어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해오던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에 익숙해 있었다. 때문에 햇볕정책은 처음부터 보수적인 식자층에 의해서 꾸준히 비판을 받아왔다. 북한에 대한 환상에 토대하고 있는 정책이고, 그렇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단이 비판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심한 경우에는 미국은 동족이고 북한은 이민족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대북화해협력을 비판하는 대신 한미동맹 강화만이 통일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관념이라는 것이 이처럼 끈질긴 것이다.
남한에게 있어 북한은 분명 군사적 경계대상이다. 6.25를 도발했고, 인민경제보다 군사경제에 주력하면서 군비강화를 해왔고, 70년대 남북회담 기간 중에도 땅굴을 팠고, 90년대 초부터는 핵문제로 국제적 물의를 일으켜 왔고, 미사일 시험발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북한과 우리는 지금도 180만의 병력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햇볕정책이 이러한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북한의 선의를 전제로 남북화해협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호전성, 공격성, 양면성 때문에 안보에 철저를 기해야 하지만, 안보에만 치중해서는 민족의 숙원이자 민족도약의 기반이 될 통일로 나가는 과정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Peace Keeping 과 함께 Peace Making을 위한 정책적 조치를 취해나가는 정책이 햇볕정책이다.
햇볕정책 이후 남북관계는 이전에 비해 살로 상전벽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비무장지대 바로 동북쪽에 금강산 관광특구가 생겼고 서북쪽 개성공단에서는 지금 이 시간 현재 8,000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600여명의 남쪽 기술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일하고 있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도로가 연결되었고, 그 길을 따라 금강산 관광객들과 개성공단 개발 차량과 기술자들의 출입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대남무역의존도가 점점 커지면서 최근들어 남북교역총액이 북한 대외교역총액의 25%까지 점하게 되었다.
햇볕정책 이후 남북관계에서 의미 있는 진전은 역시 군사부문에서 진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국방장관회담 1회, 장성급회담 4회, 대령급군사실무회담 50여회 개최 자체가 이전에는 없던 기록이다. 이러한 외형적 진전도 의미가 크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북경협과 대북 인도적 지원이 계속되고 이로 인한 북한의 대남의존성이 커지는 과정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2000년 9월 제주도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된 이후 남북철도·도로 연결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을 위해 구성된 대령급군사실무회담이 50여회 열리는 동안 남북간에는 비무장지대를 넘나드는 경협활동이 꾸준히 발전해왔다. 2004년 5월말~6월초 개최된 1~2차 장성급회담에서는 서해상에서의 남북함정간 충돌방지 방안, DMZ 선전활동 중지 및 시설물 철거 등 초보적이지만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방안을 합의했다. 그리고 그 합의는 무난하게 이행되고 있다. 당시 장성급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도, 막상 열린 장성급회담에서 합의에 도달한 것도 사실은 대북경협과 인도적 지원이 레버리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월간 신동아 2004년 1월호가 지적했듯이 개성공단 개발로 휴전선이 사실상 북상하고, 서해상에서 남북 함정간에 무선교신이 이루어지고,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의 상시 이용을 북한 군부가 협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경제적 협력과 인도적 대북지원이 군사분야에서의 긴장완화를 견인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다만, 남북간 더 큰 평화를 위한 고차원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경협과 인도적 대북지원의 역할과 기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과 인도적 대북지원은 한반도에서, 작은 평화나마, 평화가 유지되도록 버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본다.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북한불변론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의 정치이념이나 제도, 군사전략에 추호의 변화도 없는데 북한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정부는 선전하느냐 하는 것이 그 골자다. 북한의 정치, 군사면에서 변화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체제전환 선례를 보면, 대체적으로 경제, 사회문화, 정치, 군사의 순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즉 경제변화를 입구로 해서 시작된 변화가 군사변화를 출구로 해서 진행되는 것이 사회주의 체제전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구론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입구론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변화는 이미 한고비를 넘었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78년말에 시작된 개방개혁과정에서 경제, 사회문화 변화를 겪은 연후 2000년대 초 삼개대표론이 나오더니 2004년 당대회에서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는 당헌 개정까지 이루어졌다. 북한에서 이러한 변화가 언제 일어날지 예단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럽지만, 북한이 중국과 베트남의 개방개혁 성공사례를 과감하게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의 변화가 의외로 빨라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입구에 이미 들어간 북한의 변화가 출구 쪽으로 계속 나아감으로써 정치, 군사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대북정책을 추진하느냐, 아니면 북한의 경제, 사회문화 변화가 입구 쪽으로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도록 대북정책을 추진하느냐 하는 것이다. .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의 하나로 대북지원이 북한의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론적으로 성립될 수 있는 주장이다. 지원물자의 군사적 전용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대북지원의 군사적 전용을 막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남북경협과 인도적 대북지원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대남적대감이 약화되는 반면 대남우호적인 정서가 커가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병사들의 정신전력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도 착안할 필요는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한 국방비의 비율이 4.2 대 1(210.5억 달러 대 50억 달러)이라는 미CIA의 2006년판 World Fact-book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군사력이라는 것은 원래 상대적인 것이 아닌가?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도 불사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굳이 미국의 대북정책과 엇박자를 내면서까지 햇볕정책을 추진해야 하는가라는 비판도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Engagement였던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한미간에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거의 없었다. 핵시설로 의심되는 지하동굴 발견, 대포동 1호발사 등의 중대 사건 앞에서도 한미협조로 북핵문제와 미사일문제 해결의 로드맵인 페리프로세스를 창출해 냈었다. 한미공조가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성과를 낼 수 있었고, 남북정상회담 후에 미북관계 개선을 위한 고위급 상호방문까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한미갈등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Engagement아닌 Containment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대북정책 기조를 전적으로 미국의 것에 맞추기 전에는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가 대북정책 기조를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에 맞출 수 있겠는가? 우리가 대북압박이나 제재에 동참하는 경우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차피 대북포용적인 자세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병행>, <미사일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병행>을 정책기조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2002년 가을 2차 북핵위기를 맞으면서 채택된 것이다. 당시 정부로서는 93~94년 1차 북핵위기때 <선 북핵문제 해결 후 남북관계 개선>을 정책기조로 선택했다가 미북간 핵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거나 역할도 못하고 경수로 건설비용의 70%나 감당하게 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했었다. 핵문제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해결을 위해서 적극적인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동안 축적된 남북관계를 레버리지로 삼아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도 병행전략을 택했던 것이다. 미국과의 엇박자를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선택이었고, 앞으로 한미가 역할분담에 합의만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대내외정책의 상황변화가 일어나면 미국의 대북정책기조에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긴호흡, 긴안목으로 현재의 정책기조를 견지하면서 우리 방식으로 문제해결에 적극 기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대북정책으로서 햇볕정책이 진선진미한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득이 있으면 실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7~8년 동안 금강산 관광이 일상화되고, 개성공단 개발과 철도도로 연결공사가 추진되는 등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나오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커다란 안보불안감 없이 일상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혹자는 이러한 일을 두고 햇볕정책 때문에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이 커졌고 나라가 친북좌경화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기간 중에 북한이 대남안보위협을 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반북이 아니면 친북이고 친미가 아니면 반미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도 이제 젊은 사람들한테는 잘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