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맑실(49) 사계절 출판사 사장은 한국 출판계에서 공적인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에 속할 것이다. 그의 대외적 직함은 단행본 출판사들의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 총무위원장이지만, 강 사장은 그보다는 인문사회과학 책과 어린이·청소년 책을 의욕적으로 펴내는 출판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 많은 발언을 해왔다. 새해 벽두에 그와 함께 우리 출판이 선 자리를 점검해 보았다.
다양성 젖줄 중소출판 붕괴
지난해 출판계는 ‘해방 이후 최대의 불황’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사계절은 어땠나요?
=사계절도 매출액 자체만 보면 15% 정도 줄었습니다. 하지만 2003년도에는 <가방 들어주는 아이>가 <문화방송> ‘느낌표’에 소개된 덕에 매출액이 예년보다 많았어요. 지난해 우리가 겪은 매출액 감소는 다른 출판사들이 겪은 어려움과는 종류가 좀 다릅니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출판시장의 양극화입니다. 자본력 있는 출판사들은 불황 중에도 규모를 키워 가는데, 중소형 출판사들은 하나같이 극심한 부진을 면치 못했거든요. 출판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출판인력의 수요를 창출하는 곳이 중소 출판사들인데, 이들이 난관에 부닥친 겁니다. 또 하나 걱정할 일이 반품률의 증가입니다. 출판사 평균 반품률이 20%나 됩니다. 100권을 팔면 20권이 창고로 되돌아오는 거예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속출하는 소매 서점 폐업입니다. 소매서점은 출판유통의 모세혈관인데, 그 혈관이 끊어져 수족이 썩고 피가 막히니 거꾸로 들이치는 겁니다. 출판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공적인 기능을 담당해야 할 출판단체들이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출판계가 실패 경험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현안을 놓고 공동대응을 해도 잘 풀리지가 않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출판단체가 아예 손을 놓아버린 건 아닙니다. 한국출판인회의의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도서정가제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해 왔고요. 그런데도 출판단체들이 하는 일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 건 정말 절실한 문제를 포기한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에요.
인문기초없인 영화도 죽는다
%%990002%%
출판계의 가장 절실한 문제라면, 뭐가 있을까요?
=인문서 시장의 붕괴입니다. 이건 단순히 출판계의 재앙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들이닥친 문화적 재앙입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알맹이를 제공하는 게 인문이고, 한 나라의 정신적 인프라스트럭처가 인문인데, 이 인문시장이 빈사상태에 놓인 거예요. 인문이 죽으면 그 사회의 정신이 따라 죽고 맙니다. 영화 산업이 꽃피었다고 하지만, 탄탄한 인문의 토대가 없이 어떻게 양질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겠어요? 이 인문출판이 돈 안 된다고 다들 실용서만 만들고 있잖아요.
빈사의 인문출판을 살릴 길을 찾아야 할 텐데요.
=저는 정부와 학교와 출판사가 공동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1980년대 인문사회과학 시장의 활성화는 당시 학생이던 이른바 ‘386 세대’의 독서열 덕이었습니다. 문제는 지금 20대가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입니다. 대학이 인문교양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책을 읽혀야 하고 책 읽는 습관을 길러줘야 합니다. 중국 칭화대의 경우를 보면 우리와 대조적입니다. 그 대학은 이공계 대학인데도 학생들이 100권의 고전을 읽지 않으면 졸업장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인문을 창조와 혁신의 토대로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우리 대학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정부는 정책으로 인문학에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합니다. 단시간에 결과물이 나지 않는다 해서 지원을 끊어버리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죽이는 일입니다. 정책 지원으로 학자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인문서 필자군이 늘어납니다. 이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교양서를 집필하는 것도 적극 장려해야 합니다. 출판인들이 할 일은 바로 그 학자와 대중의 다리를 놓는 일이지요. 역량 있는 학자를 찾아내 대중과 넓게 만날 수 있는 책을 쓰도록 돕는 것, 그게 출판인들의 몫이죠. 그렇게 산출된 책을 대학생·청소년들이 읽고 다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그 관심이 인문학의 성장을 돕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회적 의미 묻는 출판이념 절실
사회가 받쳐주지 않더라도 출판인들이 먼저 일어서야 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책을 만들어 독자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게 출판의 사명이지요. 어떻게 하면 잘 팔아서 돈을 많이 벌까, 여기서 그치고 마는 게 문제입니다. 출판 정신이라고 할까, 출판 이념이라고 할까, 우리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문제를 다시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하던 때의 출판 정신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조금씩 인문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돌베개 출판사에서 얼마 전 신영복 선생의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냈는데, 우리의 지금 삶을 고전을 거울삼아 들여다보는 그 책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잖아요. 내용 없는 실용서에 지쳐가는 독자들이 그런 향기와 울림이 있는 책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출판인들이 앞서서 그 길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