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최영철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6000원
최영철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6000원
부산의 시인 최영철(50)씨가 여덟 번째 시집 <호루라기>(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호루라기 이제 설레는 아이들의 가슴에 있지 않고/무허가 냉방 빗물 떨어지는 비닐 하꼬방에 있네/자식 가고 영감 할멈 먼저 가고 덩그러니 남은/한많은 세월의 대못 자리 위/사지를 늘어뜨리고 있네”(<호루라기> 끝부분)
아이들의 운동회와 청춘의 달음박질에 함께했던 호루라기는 노년의 해소 천식을 지켜보다가는 그마저 떠나 보내고 이제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최영철씨의 시들은 호루라기가 되고자 한다. 덩그러니 혼자 남는 호루라기가 아니라, 운동회에서 해소 천식, 그리고 죽음과 소멸까지를 지켜보며 그에 동참하는 호루라기.
“아가들 눈은 다 이쁘다/이쁜 놈 이쁜 놈/어서 이리 나와/니 놀던 데로 가거라/(…)/이쁜 놈 이쁜 놈 요 이쁜 놈/살금살금 기어나와/쏜살같이 내 앞을 가로질러 간다/방문을 나서기 전/나를 한 번 돌아보고 간다”(<새앙쥐 불러내기> 부분)
“노스님 한 분 석가와 같은 날로 입적 잡아 놓고/그날 아침 저녁 공양 잘 하시고/절 마당도 두어 번 말끔하게 쓸어 놓으시고/서산 해 넘어가자 문턱 하나 넘어/이승에서 저승으로 자리를 옮기신다//고무줄 하나 당기고 있다가 탁 놓아버리듯/훌쩍 떨어져 내린 못난 땡감 하나”(<통도사 땡감 하나> 부분)
최영철씨의 시집에는 동시적 천진성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조적 시선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일상의 엄혹성과 이웃에 대한 연민을 노래한 시편들이 자리한다.
“나날의 생이여 어떻게 이렇게/피를 제대로 닦지도 않고 식사를/전우의 시체를 치우지도 않고 진격을”(<밥상이 있는 오후> 부분)
“집 앞 구멍가게를 지나 신작로 수퍼를 지나 버스 한 정거장 걸어 마트에 간다 마트에 가는 나를 구멍가게 앞 고장난 오락기가 빤히 쳐다본다 수퍼 앞 널브러진 빈 병들이 쳐다본다 먼지를 뒤집어쓴 새우깡 칠성사이다 옥시크린 같은 것들이 고개를 빼고 쳐다본다(…)얼굴을 돌리고 먼 산을 보며 아내가 일러준 걸 중얼중얼 외우며 간다 먼 산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 고개를 수그리고 간다”(<그 집 앞> 부분)
최영철씨의 시들은 느낌표가 되고자 한다. 동시적 천진성과 노년의 관조, 일상과 연민을 두루 응축해서 한 방울 눈물로 맺히는 느낌표. “오래 견딘 눈물 같은 것이었을까/주르륵 일직선을 그으며 떨어지다가/출렁, 한 방울 이슬로 맺혔다//저렇게 흘러내리다가/일순간 떨어지는 것들의 힘”(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최영철씨의 시들은 느낌표가 되고자 한다. 동시적 천진성과 노년의 관조, 일상과 연민을 두루 응축해서 한 방울 눈물로 맺히는 느낌표. “오래 견딘 눈물 같은 것이었을까/주르륵 일직선을 그으며 떨어지다가/출렁, 한 방울 이슬로 맺혔다//저렇게 흘러내리다가/일순간 떨어지는 것들의 힘”(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