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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제 검열’ 채만식 소설 원본 그대로

등록 2006-10-26 20:15

과도기 - 채만식 문학 원본사진자료집 1<br>
방민호 엮음. 예옥 펴냄. 5만원
과도기 - 채만식 문학 원본사진자료집 1
방민호 엮음. 예옥 펴냄. 5만원
<과도기>는 백릉 채만식(1902~1950)의 처녀작이다. 채만식은 일본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온 1923년 문학으로 방향을 틀고 ‘성능시험’ 삼아 원고지 500장 규모의 중편 <과도기>를 써서는 한성도서주식회사에 출판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이듬해 단편 <세 길로>가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 12월호에 게재되면서 공식 등단했으며, 원고 상태로 남아 있던 <과도기>는 1973년 <문학사상>에 발표되었다가 1987년 창작과비평사의 ‘채만식전집’에 수록되었다.

채만식 연구자인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엮은 원본사진자료집 <과도기>는 채만식의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과도기> 원고 405장을 컬러 사진으로 싣고 두 종류의 텍스트(원본 그대로를 입력한 텍스트와 교정본 텍스트)를 덧붙인 책이다. 8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원고지 첫장과 말미의 10~20장이 유실되었지만, 나머지는 거의 원본 그대로 알아볼 수 있다. 특히 출판을 위해 당국에 제출되었다가 검열에 걸려 붉은 줄이 그어지거나 푸른색 ‘삭제’ 도장이 찍힌 부분 등은 당시 일제의 검열 실태에 대한 사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과도기>는 도쿄에 유학 중인 20대 초반의 세 남자(봉우, 형식, 정수)가 조혼(早婚)으로 맺어진 아내에게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연애에 매달리는 모습을 그렸다. 작가는 전근대적 규범인 조혼에서 새로운 시대의 자유연애로 나아가는 당대의 풍속도를 ‘과도기’라는 제목에 담은 셈이다. 엮은이 방민호 교수는 특히 주인공 격인 정수가 신여성인 아내는 물론 새로 사귄 일본인 여성과도 헤어져서 완벽한 자유를 추구하는 결말에 주목한다. 원고지 107쪽의 “여자 해방 과도기”라는 표현에서 보다시피 채만식은 여성의 자유와 해방이 남성 쪽의 자유 및 해방의 전제조건이라 보았으며 그런 점에서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지닌다는 것이 방 교수의 판단이다.

일제 당국은 <과도기> 원고 중에서 형식이 일본 여성 문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장면, ‘왜놈’ ‘순사놈’ ‘친일파’와 같은 낱말에서부터 일제 통치를 비판하는 문장에 이르는 정치성 짙은 부분 등에 대해 삭제 도장을 찍거나 붉은 줄을 그었다. 방 교수는 “친일이냐 항일이냐 하는 채만식에 관한 이항대립적 택일 논리를 떠나 그의 문학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번 자료집의 의미를 자평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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