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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민들레야 네가 있으매 내가 있다

등록 2006-11-02 20:33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br>
황대권 지음. 열림원 펴냄. 9000원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황대권 지음. 열림원 펴냄. 9000원
‘야생초 편지’ 황대권씨, 세상의 화단에 다양성 꽃피우기
직선을 곡선으로 틀어 그 사이에 꽃과 나무를 심고
기룬 것은 다 님이니 인간을 넘어 모든 존재를 섬기라
이성에 묻힌 생태적 감수성 깨우는 성찰 에세이
“살다 보면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앞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처음 그 자리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흙탕물을 맑은 유리잔에 한 잔 가득 담아서 책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 모든 생각을 끊고 유리잔만 바라봅니다. 십 분, 이십 분…. 흙이 가라앉고 맑은 물이 고입니다.”(‘물 한 잔 앞에 놓고’)

<야생초 편지>의 작가 황대권(51)씨가 산문집을 묶어냈다. 회색벽 감옥에서 야생초 화단을 키워냈던 그가 이번엔 시야를 넓혀 삭막한 세상을 향해 다양성이 꽃피는 ‘들풀 화단’을 가꾸자고 손을 내밀었다. 성찰 에세이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열림원)는 정성스레 물을 줘 키운 장미꽃보다 민들레, 지칭개, 애기똥풀, 고들빼기가 피어내는 작은 공동체의 앙증맞은 싱그러움에 눈을 준다. “우리 인간 사회도 야생초 화단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황씨의 삶이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공동체 세상을 꿈꾸게 된 데는 13년여의 감옥 생활이 큰몫을 했다. 미국 유학생 시절인 1985년 어느날 남산으로 끌려가 60일을 고문받다 졸지에 ‘간첩’이 됐다. 국가보안법도 몰랐던 그가 ‘구미 유학생 간첩 사건’에 연루돼 갇혀 지내는 동안 한 일이라곤 풀 한포기 한포기를 들여다보며 ‘사귀는’ 것이었다. 조그만 풀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적고 생각하고 수채화로 직접 그린 옥중서간집 <야생초 편지>는 그렇게 태어나 밀리언셀러가 됐다. 내용상 ‘속편’ 성격인 이 책은 저자가 유럽의 대안공동체와 영국에서 생태농업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후 <한겨레>와 각종 매체에 실었던 46편의 글을 ‘산처럼 생각하기’ ‘똑바로 바라보기’ ‘멀리 내다보기’로 나눠 담았다. 스펙트럼은 넓어졌으나 지향점은 한곳을 향한다. 우리네 삶의 유속을 늦춰 ‘흙탕물’이 된 삶을 바라보고 생태적 삶의 실천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조금씩 바뀔 세상을 식물처럼 기다리리란 다짐에서 외려 조바심이 읽힌다.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너무 늦을 테니까.

지칭개·애기똥풀의 평화 공동체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풍경을 잃어버렸다. 출발점과 도착점만 있는 속도로 말미암아 이웃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직선에 혐의를 둔다. 도시를 직선으로 연결하면서 자연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됐고 짧은 시간에 부지런히 생산하고 허겁지겁 소비하기에 바쁜 사람들도 직선을 닮아 서로를 찌른다고. “도시의 구석구석에 곡선을 되살리고 너와 나 사이에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슬쩍 틀어놓고 그 사이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설령 이쪽에서 화가 났다 하더라도 굽은 길을 지나 저쪽으로 가는 동안에 어느덧 기분이 풀어지게 마련이다.(‘직선은 곡선을 이길 수 없다’)

이를테면 ‘곡선회복운동’은 생태적 감수성의 회복이다. 땅을 덮어버린 시멘트에서는 인간의 논리가 압도해 “지배와 피지배, 살육과 약탈을 피할 수 없다”며 “설전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수줍게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들고 끼어들어가 윙크를 한번 해보라”고 이야기한다. 콘크리트 밑에 깔린 흙의 복권을 말하는 저자의 생각은 ‘자연권’으로 뻗어간다. 산처럼 생각하라는데, 나의 느낌을 산에 이입하는 게 아니라 산 그자체가 지능이 있는 생각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권을 인권과 나란히 놓아도 하등 어색하지 않다. 따라서 물난리와 같은 자연 재앙을 저자는 ‘인간에 의한 자연권 침해의 결과’라고 본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 모든 것이 얽혀 하나로 되어 있다는 ‘연기법칙’은 전체 글을 관통한다. 어떤 생명이 더 소중한가. 뻘 위를 기어다니는 한 쌍의 고동은 인간을 위하여 희생되어야 할 만큼 인간이 고귀한가. 책은 물음을 던지며 더 넓은 생명론으로 나아간다. 우리의 이웃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존재로 확대된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나의 님이 된다는 소리다. … 우리네 삶이 고달픈 이유도 주위에 님보다 남과 놈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전부 스스로 만든 업보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이 비율을 님>남>놈의 순서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모든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비님, 벌님, 제비꽃님이 오신다면 어찌 서로 삿대질을 할손가, 어이 발 밑의 풀을 으깰손가. 밥과 똥도 모셔야할 존재다. 밥을 씹되 지극정성으로, 온 존재로 씹을 것을 권한다. 묵주 돌리듯 씹다보면 알곡에 들어 앉은 ‘그분’을 만날 수 있다며. 똥에 음식물의 영양분이 70%나 섞여 나오는 데서는 똥과 작물의 ‘모심 생태계’를 상기시킨다. 거칠게 말해 “나의 정체성은 내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과 같으니 고귀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밥상부터 환경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인스턴트와 화공약품의 편리성을 버리면 천지자연이 무상으로 주는 치유력을 얻을 수 있다.

야생초 자체에만 탐닉하지 말라

모르진 않을테다. 소박한 삶과 느림의 미덕을. 저자는 앎과 몸이 따로노는 ‘가운뎃길에 선 이들에게’ 실천 지침을 내놓는다.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은 ‘깨어있음’이다. 현재 삶의 시스템을 눈감아주되 조금씩 조금씩 눈떠가자는 것이다. 아파트 공터에 강낭콩 싹이 날아들어 급기야 텃밭이 되고 이웃사람들이 몰려들어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녹색 아파트 공동체로 변해가는 식으로.

한편 저자는 ‘<야생초 편지>의 독자들에게’ 노파심을 전한다. 자신은 ‘야생초 연구가’가 아니라 ‘생태공동체 운동가’라며 독자들이 야생초 자체에만 탐닉하지 말라는 당부다. <야생초 편지>에서 전하고자 한 바는 “우리 인간의 생명만큼이나 다른 모든 생명들이 소중하며, 개개의 생명들은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커다란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 이 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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