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별처럼 빛났던 그리스·로마의 영웅들

등록 2006-11-02 20:48

인물로 보는 서양 고대사<br>
허승일 외 지음. 도서출판 길 펴냄. 3만5000원
인물로 보는 서양 고대사
허승일 외 지음. 도서출판 길 펴냄. 3만5000원
반신화적 테세우스부터 위대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까지
고대 인물 39명 담은 ‘사기열전’ 1천년 역사 모자이크 하듯
‘키케로니아누스’라는 말이 있다. ‘키케로의 신봉자’를 뜻하는 이 말은 키케로의 문체를 모범으로 삼아 라틴어를 구사한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이 말을 유행시킨 사람은 서구 르네상스 시대 말기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1536)였는데, 그는 1528년 쓴 책 <키케로니아누스 또는 최상의 문체>에서 ‘키케로니아누스’를 남용하는 당대 글쓰기 행태를 비판했다. 인문주의 정신의 대표자가 나서서 키케로 문체 모방을 문제삼을 정도로 그 시대의 고대 문화 탐닉은 맹렬했다.

그러나, 고전 그리스·로마 문화를 부흥시킨 그 맹렬한 탐닉이야말로 근대 서구 문명 발전의 지칠 줄 모르는 원동력이 됐다.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된 그리스의 민주정과 로마의 공화정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근대 민주주의의 몸통으로 더 화려하게 부활했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정치 체제로 자리잡았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는 좋든 싫든 우리 시대의 뿌리이며 원형이다.

<인물로 보는 서양 고대사>는 이렇게 우리 시대의 정신을 규정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인물로 그려낸 책이다. 허승일 서울대 명예교수를 필두로 하여 국내 서양 고대사 연구자 대다수가 필자로 참여해, 하늘의 별처럼 빛났던 시대의 대표자들을 불러냈다. 그리스 신화와 역사의 중간지대에 놓인 반신화적 인물 테세우스부터 로마 제정기 마지막 철학자이자 서양 중세의 신학적 성채를 세운 아우구스티누스까지 39명이 여기에 모였다. 39편의 초상화들이 촘촘히 모여 서양 고대 1천년 역사를 담은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가 그려졌다. 이 책은 말하자면, 오늘의 시각에서 쓴 서양 고대에 관한 ‘사기 열전’이자 국내 학자들이 함께 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만사에 통달한 ‘전인’이 있었듯이, 고대 로마에 전인이 있었다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기원전 106~43)가 그 전인의 대표자였다. 키케로는 그리스 철학을 철저히 익혀 라틴어로 풀어낸 그 시대의 위대한 교양인이었고, 로마 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웅변가였으며, 웅변의 원리를 방대한 수사학 저서에 담아 체계화한 저술가였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 이전에 정치가였다. 귀족과 평민 사이 신흥 기사계급 출신이었던 그는 ‘말의 힘’만으로 정치계의 스타가 됐고, 최고직위인 콘술(집정관·통령)이 됐으며, 한때 ‘국부’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원로원이 주도하는 로마 공화정이 붕괴돼 가던 ‘혁명 시기’였다. 공화정의 위기는 키케로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심각한 상황에 도달해 있었다. 원로원의 귀족계급이 국부를 틀어쥐자 평민 계급의 불만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던 것이다. 기원전 2세기 말에 그라쿠스 형제가 이 계급 갈등의 한가운데서 등장했다. 그라쿠스 형제는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귀족계급을 공격해 ‘분배의 정의’를 세우는 개혁을 단행했다. 이들은 로마 역사상 최초의 민중 선동 정치가였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이들을 차례로 죽음으로 내몰았다. 로마는 이제 두 세력의 엎치락 뒤치락 싸움이 100년 동안 계속될 참이었다.

키케로는 이 세력 판도에서 원로원 세력 편에 서 있었다. 원로원의 권위 아래 질서가 유지되던 그라쿠스 이전의 로마 공화국을 이상국가로 보았던 그는 공화정의 붕괴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발버둥쳤다.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던 그는 정치적으로는 낡은 세력의 대표자였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 키케로는 제1차 삼두정치의 한 축이던 안토니우스에 대항해 자신의 웅변술을 무기로 삼아 격렬하게 싸웠다. 기원전 43년 키케로는 안토니우스가 보낸 자객에게 머리를 잘렸다. 비판적 필봉을 휘두르던 두 손목도 함께 잘렸다. 키케로의 죽음은 로마 공화정 몰락의 상징이었다. 13년 뒤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장악해 황제로 등극했다. 400여년 지속될 제정시대가 열린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