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낭기열라 펴냄. 8500원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낭기열라 펴냄. 8500원
17살 이스라엘 소녀와 20살 팔레스타인 청년
유리병으로 시작한 편지 통해 서로의 안부 걱정하며
집단적 ‘그들’에서 구체적 ‘그 사람’으로 상대 이해
“사람들 사이에 넘지 못할 경계선은 없다는 증거”
유리병으로 시작한 편지 통해 서로의 안부 걱정하며
집단적 ‘그들’에서 구체적 ‘그 사람’으로 상대 이해
“사람들 사이에 넘지 못할 경계선은 없다는 증거”
“너도 물론 알고 있을 테지만, 테러가 있을 때마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고한 생명들을 그렇게 죽일 수 있냐고 되묻곤 해.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고. 그러다 막연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우리 쪽과 마찬가지로 너희 쪽에도 당연히 뚱뚱한 사람들과 마른 사람들, 잘 사는 사람들과 못 사는 사람들, 착한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말이야.”(31~2쪽)
“‘나·너·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 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경우에 따라서 바뀌기만 할 뿐 바로 그 복수는 늘 존재하는 거지.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절대로 ‘하나+하나+하나’가 아니라 늘 400만인 거야. 그러니 사람들은 민족을 통째로 등에 지고서 살아가는 것이고. 무거워. 무거워. 무거워 등이 뭉개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져 버리지.”(72~3쪽)
열일곱 살짜리 이스라엘 소녀 탈 레빈과 스무 살 된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 알 파르죽이 이메일 편지를 주고받는다. 시작은 탈이 병에 넣어 가자의 바닷가에 띄운 종이 편지. 여고생 탈이 이름 모를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편지를 띄울 생각을 한 것은 자신의 동네 카페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를 목격하면서였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극악한 테러에 분노하거나 두려움에 떠는 동족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다. 구체적인 팔레스타인 친구 한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히브리어를 배운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의 손에 그 편지가 들어가면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얘기가 쉽게 풀려나가는 것은 아니다. 나임이 보기에 탈은 순진하고 낭만적인 ‘꼬마 숙녀’일 뿐이다. 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느끼는 테러 위협에 대해 심각하게 말하지만,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설치한 철조망과 장벽 안에서 감옥과도 같은 삶을 이어 나가며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총포 공격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탈이 대여섯 번이나 메일을 보내는 동안 나임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그런 생각 때문이다. 탈의 거듭된 요청에 마지못해 답장을 쓰면서도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으면서 불퉁거리는 말투로 시종한다.
‘21세기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러나 두 젊은이는 테러와 그에 대한 보복 공격-또는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학살과 그에 대한 보복 테러-의 악순환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평화적 공존을 향한 돌파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생각을 같이한다. 이스라엘 과격파에 의해 살해당한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가 주도한 오슬로 평화협정에 대한 지지에서 두 사람은 한 목소리를 낸다.
두 젊은이가 서로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계기가 있다. 팔레스타인 과격파를 겨냥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의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보도를 접한 탈은 나임에게 거듭 편지를 보내 “네가 무사한지만 대답해 줘”라고 간청한다. 그 편지를 접한 나임은 “나는 이스라엘 쪽의 누군가가 안부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팔레스타인 사람일 것”(103쪽)이라 자조적으로 쓰면서도 탈을 향한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느낀다.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그는 짐짓 강조하지만, ‘21세기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표현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네가 무사한지 알려줘”라는 간청은 소설 뒷부분에서 또 한 번 되풀이된다. 이번에는 경우가 바뀌었다. 나임을 향한 탈의 요청이 아니라, 나임 쪽에서 탈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탈이 들르기로 한 예루살렘의 한 구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뒤 그에게서 한동안 소식이 끊기자 나임은 탈의 안부가 걱정이 된다. 사실인즉, 탈 자신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바로 눈앞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 것.
현실 발빼는 결말 아쉬워
이스라엘 소녀와 팔레스타인 청년에게 상대 민족을 향한 테러와 공격이 한 사람의 안부에 대한 걱정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커다란 발전이다. 추상적이고 집단적인 ‘그들’이 아니라 구체적 경험의 대상인 ‘그 사람’으로 상대방을 이해할 때 함부로 총을 쏘거나 폭탄을 터뜨리지는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개별성을 거듭 강조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심리치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영국인 자원봉사자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각자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걸, 그들이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란 걸 인식하는 거야. 그 사람들 각자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니까.”(148쪽)
상황이 이쯤 진척되자 나임은 그동안 숨겨 왔던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알려주고, 둘 사이의 의사소통 역시 이메일에서 한 단계 나아간 메신저로 업그레이드된다. 그리고 나임은 자신이 한때 ‘탈’이라는 이름의 이스라엘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다는 것(이 무슨 우연의 일치!), 그리고 지옥 같은 가자를 떠나 캐나다로 유학을 갈 계획이라는 사실 등을 비로소 밝힌다.
이스라엘 소녀와 팔레스타인 청년 사이의 교신은 확실히 중요한 진전이다. 그 일을 두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탈이 표현하다시피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넘지 못할 경계선은 없다는 증거”(180쪽)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한계가 뚜렷한 진전이요 증거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나임이 가자의 현실을 벗어나 해외 유학길에 오름으로써 둘 사이의 관계가 일단락된다는 설정은 아쉬움을 준다. 나임은 3년 뒤의 특정한 날 로마 트레비 분수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제안하는데, 그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치열한 현실에서 발을 빼는 몸짓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작가 발레리 제나티(36)는 프랑스 태생이지만 이스라엘에서 성장하고 군에 복무한 경험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몽트뢰유 탐탐 청소년문학상’을 받는 등 호평을 얻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이스라엘 소녀와 팔레스타인 청년 사이의 이메일 우정을 다룬 프랑스 소설이 출간되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가자지구 남부의 한 팔레스타인 난민촌 순교여단 지도자 장례식 중 무기를 들고 참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병대원들. 가자지구/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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