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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저주받은 천재들의 집단 고백록

등록 2006-11-30 23:04수정 2006-11-30 23:16

인상주의의 역사.존 리월드 지음. 정진국 옮김. 까치 펴냄. 각권 2만9000원
인상주의의 역사.존 리월드 지음. 정진국 옮김. 까치 펴냄. 각권 2만9000원
당대 대중들의 천대와 조롱 한몸에 받은 인상주의 미술
심장과 영혼을 던져 싸운 끝에 현대 예술의 밑돌이 되기까지
“유치한 벽지도 이런 바다 풍경보다는 더 잘 다듬어진 것이지.”

“색을 상당히 이해하는 이 화가가 더 잘 그릴 수 없었다는 것은 유감이네. 그가 그린 무용수의 다리는 치마의 옷감처럼 면직물 같아.”

1874년 파리에서 열린 한 미술 단체전시회가 어느 풍자신문에서 잘근잘근 씹혔다. 그 유명한 모네의 작품 <인상-해돋이>와 르누아르의 작품 <무용수>는 한껏 비웃음을 사며 관람객과 첫 대면을 했다. 일련의 젊은 화가들이 조직한 그들만의 ‘의미 깊은’ 첫 전시회에서였다. 당시 ‘관전’격인 공식 살롱에 출품을 거부하고 도전장을 내민 단체전이었건만 4주 동안 찾은 3500여명의 관람객중 대다수는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려는 쪽보다는 호기심에 동한 발길이었다. “물감 튜브 몇 개를 권총에 장전하여 화폭을 향해 발사한 뒤, 서명해서 작품을 끝낸 것”이라는 농담도 떠돌았다. 심지어 세잔과 30년 지기 친구이자 그들의 혁신적 화풍을 옹호했던 에밀 졸라조차 훗날 <걸작>이란 소설에서 전시회장의 풍경을 조롱조로 묘사했다.

후기인상주의의 역사-반 고흐에서 고갱까지.
 존 리월드 지음. 정진국 옮김. 까치 펴냄. 각권 2만9000원
후기인상주의의 역사-반 고흐에서 고갱까지. 존 리월드 지음. 정진국 옮김. 까치 펴냄. 각권 2만9000원
“그들의 웃음은 숙녀들의 손수건으로도 막을 수 없었고 신사들은 배꼽을 쥐고 더 큰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퍼지는 군중의 웃음은 오락이 되었고, 별 것 아닌 것에 폭소를 터트리고, 아름다운 것 못지않게 따분한 것에도 즐거워했다.”

준비되지 않은 대중들에게 불쑥 자신의 존재를 알린 이들은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드가, 세잔과 유일한 여성인 베르트 모리조. ‘인상주의자’라는 놀림감이 된 그 명칭을 자신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인상파를 자처한 이들이다. 그들은 원근법, 균형 잡힌 구도, 이상화된 인물, 명암대조법 등의 전통적 관습을 거부하고 색채와 빛을 통하여 찰나의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 사실주의의 객관성을 거부하고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빛’을 화폭에 담자 전통적인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멀어지고 밝은 물감이 들어찼다. 대기효과에 묻히는 대상의 부분색을 무시하자 흐릿한 윤곽의 생생한 붓자국에서 오는 색채 효과는 더욱 풍성해졌다.

인상파의 등장은 미술사에 있어 엄청난 사건이었다. 인상파의 단체 전시회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불과 12년간 8차례로 끝났지만 반 고흐, 고갱, 쇠라로 이어지는 후기 인상주의를 낳았을 뿐 아니라 고전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옮겨가는 밑돌이 됐다. 입체파, 야수파, 추상파, 표현주의 등으로 분화되는 20세기 미술의 원천이 된 것이다. 미술을 넘어 상징주의 문학, 인상파 음악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두루 영감을 주기도 했다.

1874년 열린 인상파의 첫 단체전시회에 출품한 르누아르의 <객석>. 출품작 대부분이 안팔렸지만 동생과 새 모델을 그린 이 작품은 푼돈에 팔렸다.
1874년 열린 인상파의 첫 단체전시회에 출품한 르누아르의 <객석>. 출품작 대부분이 안팔렸지만 동생과 새 모델을 그린 이 작품은 푼돈에 팔렸다.
<인상주의의 역사>는 인상주의가 싹틀 무렵인 1855년부터 마지막 단체전을 열었던 1886년까지의 전개상을 따라간다. 역자의 표현대로 “한 편의 가슴 뭉클한 집단적 자서전이나 고백록”이라 할 만큼 5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에는 당대 화가들의 숨소리가 생생하다. 미술사학계의 거목 존 리월드(1912~1994)는 당대의 비평, 수많은 목격담, 화가들 자신의 글과 발언 등을 토대로 19세기 후반의 삶과 예술의 촘촘한 지형도를 복원했다. 활자는 빡빡한 편이지만 도판이 많아 눈을 쉬어 가게 한다. 리월드는 인상주의에 대한 ‘3부작’을 필생의 역작으로 저술해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는데 <후기 인상주의의 역사-반 고흐에서 고갱까지>는 2편으로 이번에 함께 번역됐다. 아직 한글판으로 나오지 않은 마지막 편 <고갱부터 마티스까지>를 포함하면 1855년부터 1906년에 이르는 50년간의 프랑스 인상주의 미술운동의 전모를 소상히 꿰는 셈이다. <인상주의의 역사>가 단체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렸다면 <후기 인상주의의 역사>는 반 고흐와 고갱, 세잔 등 핵심인물들의 초상을 주축으로 삼았다.

반 고흐도 처음엔 인상파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되는 대로, 엉성한 소묘와 형편없는 색”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게 첫인상이었다. 그림이 팔릴 리 없는 ‘저주받은 천재’들은 물감조차 사기 힘든 현실이 다반사였다. 그런 와중에도 인상파 집단은 그들끼리의 ‘살벌한 싸움’을 통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단련시켰고 고흐, 고갱, 세잔의 독창적 개별 화풍으로 꽃피웠다. “이발소에서도 걸어놓고 볼 수 없을 괴상망측한 색과 드로잉과 구성을 모아놓은 것”이라 낙인찍혔던 그림들이 불과 100여년이 흐른 뒤 이발소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이 됐을 뿐더러 후대에 가장 널리 ‘소비되고’ 있다.


고갱이 밝힌 미술론은 대중의 천대와 수많은 편견을 깨부수고 색과 추상의 대담한 세계로 나아간 인상주의 운동에 바치는 오마주로 읽힌다. “심장과 영혼을 던져 싸워야 한다. 예외 없이 모든 화파와 싸워야 한다. …이젤 앞에서 화가는 과거와 현재의 노예가 아니다. 자연과 이웃의 노예도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이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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