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측량하고 있는 유럽인. 측량하는 눈은 조선을 타자화하는 식민주의의 눈이다.
책세상 제공
이지은 교수 ‘왜곡된 한국…’
식민주의적 유럽 시선 추적
식민주의적 유럽 시선 추적
‘고요한 아침의 나라’ ‘신비한 동방의 나라’라는 한국 이미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그 이미지가 휘두른 ‘담론 권력’은 어떤 효과를 냈을까? 독문학자 이지은 인천대 교수가 쓴 〈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책세상 펴냄)은 ‘유럽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 300년’을 꼼꼼히 추적해 그것이 한국 역사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핀 책이다. 1980년대 독일에서 수학하던 중 이 문제에 관심을 품게 된 지은이는 지난 몇 년 동안 독일 베를린 국립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문서보관서에서 수백종의 한국 관련 사료를 찾아내 이 과제를 수행했다.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300년을 포괄하는 사료들에는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욕망 속에서 상상하고 해석한 ‘먼 나라’ 한국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다. 대지는 풍요롭다. (…) 결코 소진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지하자원인 금·은 그리고 광석은 부지런한 유럽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여인들은 아름답고 몸매는 늘씬하다. 여자들의 젖가슴은 출렁이고 엉덩이는 풍만하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이 글은 시에로체프스키라는 폴란드 출신 군인이 쓴 기행문 〈코리아〉의 서두다. 기행작가이기도 했던 시에로체프스키는 1903년 10월 부산항에 도착해 한국을 둘러보고 돌아가 이 책을 썼는데, 서두에 쓴 것은 그가 부산항에 도착하기 전 선상에서 그려본 한국이었다. 시에로체프스키의 글은 상상의 서두를 지난 뒤 곧바로 이렇게 이어진다. “드디어 한국의 해안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일본의 해안에 비해 한국의 해안은 더럽고 황량해 보였다.” 상상과 현실이 한 문단 안에서 극명하게 부딪치는데, 지은이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20세기 초 한 유럽인이 머릿속에서 상상한 한국이 어디에서 기원했느냐는 것이다. 지은이가 찾아낸 사료로 보면 ‘시에로체프스키의 한국 이미지’의 원형을 최초로 담은 글은 중국에서 예수회 선교사로 활동했던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1655년 출판한 〈새 중국 전도〉의 한국 관련 장이다. 마르티니는 한국을 이렇게 묘사한다. “한국은 매우 풍요로운 땅이며 밀과 쌀이 풍부하다. (…) 한국에서는 인삼이 매우 많이 재배되며 금과 은이 풍부하게 매장된 산들이 많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동해안에서 진주를 채집한다.” 마르티니의 글은 이렇게 ‘유럽인의 한국에 관한 인식’, 곧 한국관을 구성하는 ‘인식소’를 처음으로 제공했으며, 그 인식소는 250년 뒤에 한 폴란드인 여행가에게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유럽인은 실상과 거의 무관하게 한국의 이미지를 발명하고 조작했다. 이들의 한국관 안에서 한국은 문명의 반대편에 있는 야만이며 미개이고 이국취미를 돋우는 타자다. 한국은 유럽 문명이 지배하고 개발해야 할 대상이다. 유럽이 한국을 식민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인의 이런 한국관은 유럽의 대리자인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는 것을 아무런 윤리적 부담감 없이 허용하는 인식적 바탕이 됐다. 지은이는 식민주의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유럽인의 한국관’이 해방 뒤에도 중요한 정치적 효과를 냈다고 강조한다. 1947년 더글러스 맥아더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일본인과는 달리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한국인에게는 권위적인 강력한 통치자가 필요하다.” 왜곡된 한국관은 1980년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이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다”라고 한 데까지 이어졌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그러진 한국관이 한국인 자신들에게 내면화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이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스스로 부르는 것은 서양인의 눈을 내면화해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는’ 일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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