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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내 속의 ‘상처받은 아이’를 가만 보세요

등록 2006-12-14 14:44수정 2006-12-14 20:10

<천 개의 공감> 김형경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1만1000원
<천 개의 공감> 김형경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1만1000원
가족·사랑·관계맺기 등 내면의 응어리로 절망하는 사람들
‘정신분석 작가 김형경’씨가 공감의 힘으로 치유에 나섰다
문제 출발점도 해결책도 자기 속에…“자아를 직시하세요”
공감한다는 것은 함께 느낀다는 것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타인이 겪는 고통에 동참해 그 고통을 내가 겪는 것처럼 다시 겪는 것이다. 마음 속 슬픔, 아픔, 수난의 현장에 함께 서서 어깨를 겯는 것이다. 소설가 김형경씨가 쓴 <천 개의 공감>에서 말하는 ‘공감’은 바로 그런 뜻이다.

이 책은 지은이가 <한겨레> 지면 상담 코너(‘형경과 미라에게’)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박미라(전 <이프> 편집장)씨와 번갈아 쓴 이 코너에 저마다 절박한 심리적 곤경에 부닥친 사람들이 상담을 원하는 글을 올렸고, 지은이는 여기에 성실히 답했다. 그 답글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신문 지면에 실렸고 일부는 이 책에 처음 소개됐다.

지은이의 답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감하려면 타인의 삶의 잘 느껴야 하고,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지은이는 연전에 바깥 세계를 두루 도는 배낭여행과 자신의 내면을 알아가는 심리여행을 하나로 겹쳐 쓴 <사람 풍경>을 펴낸 바 있다. 또 그 자신이 삶의 난관에 치여 100여 차례에 걸친 정신분석 상담을 받기도 했고, 마음의 비밀을 풀어보려 수백 권의 심리학 책을 읽기도 했다.

문제 출발점도 해결책도 자기 속에…
문제 출발점도 해결책도 자기 속에…
‘심리상담가’ 김형경의 글이 보여주는 공감의 순도와 생각의 밀도는 이런 이력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사소한 갈등에도 너무 큰 상처를 받는 사람, 자신감이 없고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선한 나와 추악한 나로 분열돼 고통받는 사람, 일도 사랑도 꼬여만 가는 사람들이 가슴 속에 꼭꼭 눌러두었던 비밀을 조심스레 드러내 보이면, 지은이는 그들의 마음 밑바닥까지 내려가, 침몰한 배를 인양하듯 고통의 원인을 끌어올린다.

이 책에 모인 상담글은 모두 마흔네 꼭지다. 정신에 체증을 일으킨 갖가지 괴로움들을 어루만지는 지은이의 글들이 ‘자기 알기’ ‘가족 관계’ ‘성과 사랑’ ‘관계 맺기’라는 이름의 네 부로 묶였다. 어떤 글이든 자기 내면에 뭉친 응어리를 풀어내 자기답게 자기를 세우고 세상과 건강하게 만나는 길을 찾고 있다.

그러니까 문제는 자기다. 문제의 출발점도 자기에게 있고 문제의 해결책도 자기에게 있다는 것이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심리학의 믿음이다. 이 자기는 원본능(이드)과 자아와 초자아로 이루어져 있다고 정신분석학은 말한다. 원본능이 성충동을 비롯해 쾌락원칙만을 따르는 원초적 힘이라면, 초자아는 명령하고 통제하고 처벌하는 내면의 권위적인 목소리이며, 자아는 그 두 가지 무의식적 힘을 합리적으로 조절해 정체성을 지켜가는 현실 속의 ‘나’이다.

취약한 자아가 삶의 성숙 가로막아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이 자아가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초자아가 너무 무섭게 자아를 노려보고 있어서 아무런 이유 없이 죄의식과 불안감에 시달리거나, 원본능의 힘에 밀려 공격성이나 성충동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힘들 것도 없는 일상의 관계가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일 수도 있다.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자아’는 잔뜩 움츠려 오그라들거나 긴장을 견디지 못해 터져 버린다.


건강한 자아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곤란한 상황에 봉착하면 위축되고 쩔쩔매는 경우가 많다. 지은이는 우리 내면에 저마다 ‘상처 입은 아이’가 있다고 말한다. 일이 터질 때마다 그 아이가 울면서 기어나온다. 이 아이가 우리의 성숙을 가로막는다. 보채고 떼쓰고 도망가고 숨고 거짓말하는 아이의 생존법이 말하자면, 곤경에 처한 성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방어기제들이다. 자기 내부의 부정적인 것들을 분리시켜 타인에게 투사하고, 환상 속에 틀어박혀 현실을 부인하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다 방어기제의 발동이다.

쿨한 사랑은 책임 회피 방어기제

지은이는 자아의 취약성에서 비롯한 이 모든 문제를 풀려면 먼저 나 자신과 정직하게 만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린 시절에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억압하거나 회피했던 감정을 이제 뒤늦게나마 마주보고 넘어서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다.

저자 김형경씨
저자 김형경씨
사랑은 나 자신과 만나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지은이는 오늘날 사랑의 세련된 문법으로 유통되는 ‘쿨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에 기대 말하면, 그것은 ‘회피 방어기제’일 뿐이다. ‘쿨한 사랑’이란 질투와 불안에 떠는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보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며 사랑의 관계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견디지 못하는 허약한 자아의 자기 변명이다. 질투와 불안이 없는 사랑은 없다. 질투와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믿음을 키워가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참모습이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할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을 그대로 깊이 느껴보세요. 내가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내 불안감이 이토록 깊구나, 내가 이토록 질투가 심한 사람이구나…, 알아차리고 체험하는 겁니다. 그 일은 온몸이 무너질 듯 고통스럽고, 가슴이 바스러질 듯 힘들 것입니다.”

그 다양한 감정들을 의식적으로 체험하고 넘어서고 또 느끼기를 반복하다 보면 내면의 감정들이 풀릴 것이다. 그리하여 무의식에 응축된 옹이들이 천천히 뽑혀져 나가고 그런 만큼 더 편안하고 더 너그러우며 상대를 더 깊이 신뢰하는 관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응어리를 풀고 억압을 극복하면 더 자유로워지고 더 강해진다. 자기 삶의 주권자, 자기 인격의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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