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근대 문학담론’ 비판 심포지엄
지난 10여년 동안 유행해온 ‘탈근대 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학술회의가 열렸다. 민족문학사연구소(공동대표 김시업·최원식)가 ‘탈근대 문학담론 비판’을 표제로 내걸고 15일 동국대에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이 열린 시점도 흥미롭다. 탈근대론자 가운데 일부가 ‘근대성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저항적 민족주의마저 부정하고, 그걸 매개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친일파 옹호와 손잡는 기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친일을 직접 옹호하지는 않더라도, 친일파 후예인 수구적 국가주의 세력과 유착하는 탈근대론자도 최근 심심찮게 발견된다. 일부 탈근대론자들이 여러 근대화론 중에서도 가장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논리와 동거하는 형국인 셈이다.
하정일 교수(원광대)는 이날 ‘탈근대 담론:해체 혹은 폐허’라는 논문에서 탈근대 담론이 주장하는 ‘해체’의 끝은 “폐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탈근대 담론이 민족·민중 담론을 전면 부인함으로써 한국 근대문학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 이룬 반체제적 진보성을 평가절하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 근대문학을 서구 근대의 확장 내지 모방으로 과잉 일반화해 제3세계 문학으로서 한국 문학이 지닌 특수성을 은폐했다”고 탈근대 문학론의 허점을 짚었다.
“선한 민족주의·나쁜 민족주의 모두 버려
수구적 국가주의와 유착하는 모순 발생” 하 교수는 탈근대 담론이 잘못을 범한 이유를 ‘주체의 해체’라는 탈근대론의 목표에서 찾았다. 민족이나 계급 같은 거대한 집단적 주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강화할 때 집단에 속하지 않는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한다는 것이 탈근대론의 기본 인식이다. 따라서 강고한 집단적 주체를 해체하여 다양한 하위주체들의 존재를 복원하고, 또 그 주체가 배제한 타자의 목소리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 탈근대론의 주장이다. 탈근대론자들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을 해체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그 민족이 제국주의의 압력 속에서 제국주의를 모방해 형성된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건 민족주의건 억압적 주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탈근대론의 이런 결론이 저항의 거점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낸다고 지적한다. 제국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그 극복을 “집단적으로 실천할 주체의 형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그 주체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탈근대 담론이 자기배반적인 역설을 품고 있음도 지적했다. 주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복원한다면서 정작 민족이라는 집단을 하나의 목소리만 지닌 단일 주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과 민중도 내적으로 다양한 정체성들로 분할돼 있는 이질적 집합체다.” 이들이 결사와 연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제국주의 혹은 자본주의에 억눌리는 ‘타자’라는 역사적 공통성 때문이다. 탈근대론이 민족과 민중을 부정하는 것은 “일종의 과민반응”이다. 하 교수는 탈근대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근대’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체제이며 다양한 노선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걸어온 모습을 서구 근대의 확장 내지 재생산으로만 보는 것은 탈근대론이 ‘서구 중심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하 교수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포함해 모든 근대적 운동을 하나의 논리로 묶어 부정하는 것은 ‘이론적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밖에 박수연 교수(충남대)의 ‘포스트식민주의론과 실재의 지평’, 신두원 교수(인하대)의 ‘파시즘 담론 비판’, 김양선 교수(한림대)의 ‘탈근대·탈민족 담론과 페미니즘’ 등이 발표됐다. 발표자들은 탈근대 담론이 민족주의를 비롯한 기존의 저항 담론에 담긴 억압성을 성찰할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선한 민족주의’든 ‘나쁜 민족주의’든 한꺼번에 내버림으로써 저항의 주체마저 잃어버리는 잘못을 범했다고 공통으로 지적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수구적 국가주의와 유착하는 모순 발생” 하 교수는 탈근대 담론이 잘못을 범한 이유를 ‘주체의 해체’라는 탈근대론의 목표에서 찾았다. 민족이나 계급 같은 거대한 집단적 주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강화할 때 집단에 속하지 않는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한다는 것이 탈근대론의 기본 인식이다. 따라서 강고한 집단적 주체를 해체하여 다양한 하위주체들의 존재를 복원하고, 또 그 주체가 배제한 타자의 목소리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 탈근대론의 주장이다. 탈근대론자들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을 해체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그 민족이 제국주의의 압력 속에서 제국주의를 모방해 형성된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건 민족주의건 억압적 주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탈근대론의 이런 결론이 저항의 거점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낸다고 지적한다. 제국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그 극복을 “집단적으로 실천할 주체의 형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그 주체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탈근대 담론이 자기배반적인 역설을 품고 있음도 지적했다. 주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복원한다면서 정작 민족이라는 집단을 하나의 목소리만 지닌 단일 주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과 민중도 내적으로 다양한 정체성들로 분할돼 있는 이질적 집합체다.” 이들이 결사와 연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제국주의 혹은 자본주의에 억눌리는 ‘타자’라는 역사적 공통성 때문이다. 탈근대론이 민족과 민중을 부정하는 것은 “일종의 과민반응”이다. 하 교수는 탈근대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근대’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체제이며 다양한 노선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걸어온 모습을 서구 근대의 확장 내지 재생산으로만 보는 것은 탈근대론이 ‘서구 중심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하 교수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포함해 모든 근대적 운동을 하나의 논리로 묶어 부정하는 것은 ‘이론적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밖에 박수연 교수(충남대)의 ‘포스트식민주의론과 실재의 지평’, 신두원 교수(인하대)의 ‘파시즘 담론 비판’, 김양선 교수(한림대)의 ‘탈근대·탈민족 담론과 페미니즘’ 등이 발표됐다. 발표자들은 탈근대 담론이 민족주의를 비롯한 기존의 저항 담론에 담긴 억압성을 성찰할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선한 민족주의’든 ‘나쁜 민족주의’든 한꺼번에 내버림으로써 저항의 주체마저 잃어버리는 잘못을 범했다고 공통으로 지적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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