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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프랑스가 사랑한 프랑스의 ‘마지막 왕’

등록 2006-12-21 21:35수정 2007-03-26 18:00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 자크 아탈리 지음. 뷰스 펴냄. 주섭일 감수·해설. 김용채 옮김. 2만3천원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 자크 아탈리 지음. 뷰스 펴냄. 주섭일 감수·해설. 김용채 옮김. 2만3천원
철학자이자 사회당 동료였던 아탈리가 쓴 미테랑 일대기
비전·카리스마·경영능력 갖춘 열정적 정치인으로 평가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출신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올 초 그의 사망 10주기를 맞아 프랑스는 들썩거렸다. 생가를 비롯해 그의 발자취가 남은 곳곳에서 추모의 물결이 흘러 넘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미테랑을 그리워할까. 대통령 당선 전부터 17년간 미테랑을 보좌한 자크 아탈리는 그가 “프랑스의 마지막 왕”이었다고 말한다. 1981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안으로 개혁정치를, 밖으로 유럽연합을 주도하며 ‘강한’ 프랑스를 이끌었다는 뜻에서다.

미테랑의 생애를 담은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에서 아탈리는 좀 더 생생하게 미테랑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미테랑과 아탈리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다. 아탈리는 미테랑이 야당 지도자였던 1966년부터 인연을 맺어 좌파 공동강령이 나온 1972년부터는 함께 살다시피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로는 특별보좌관으로 엘리제궁에서 미테랑에게 들고 나는 모든 메모를 읽었을 정도다. 때로는 동료로서 때로는 친구처럼 미테랑의 통치행위를 지근거리에서 내밀하게 관찰한 것이다. 문서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평전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어려워질 거야. 우파는 아주 빨리 회복할 것이고, 좌파의 환상은 흩어질 것이오. 시간이 갈수록 우리한테 불리해. 국민여론은 빨리 실망할 것이고,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대통령 당선 직후 자신의 책상에 쌓인 축하메시지를 훑어보던 미테랑이 아탈리에게 큰 소리로 내뱉은 말이다. 그는 엘리제궁에 도착하자마자 ‘혁명’이니 ‘위대한 날의 저녁’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을 자제시키고, 신속히 개혁조치에 착수했다.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은 심각했다. 노동자의 절반은 휴가를 떠나지 못했고, 70만명의 봉급 생활자들은 한해에 40번 이상의 밤샘노동을 했다. 노동자 자녀들의 대학 진학률은 4%에 불과했는데, 회사 중역의 자녀들은 4분의 3이나 대학에 들어갔다. 미테랑은 60세 정년제, 주 39시간 근무, 제5주째 유급휴가, 노동조건 개선 등을 단행해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었다. 적어도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해준 것이다. 훗날 비난을 받은 국유화 조처들도 당시로선 프랑스 대부분의 대기업을 파산에서 구할 수 있었다.

문화 분야에서 그의 족적을 더듬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라데팡스에 세운 신개선문과 새로 지은 국립도서관은 전통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프랑스의 기질을 잘 보여줬다. 취임 첫 해부터 문화부 예산을 두 배로 늘린 미테랑은 “모든 프랑스인이 만들고 창조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그들의 재능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도록”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미테랑
미테랑
‘책읽는 대통령’으로도 유명한 미테랑은 시간이 나면 엘리제궁에서 빠져나와 조용한 곳에 숨어 책을 읽었다고 한다. 한가한 점심식사때면 문인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식 또는 예술세계와 정치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늘 책을 읽고 글을 써서 긴 안목과 비전을 갖고 정치에 임할 수 있었다는 평가들이 뒤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탈리는 미테랑의 집권 14년간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혼자서 결심한 사형제 폐지, 우파의 총선압승 이후 단행된 좌우연정, 유럽연합 건설을 주도했던 외교행보 등 그의 업적 뿐 아니라 고뇌와 관심사까지. 다만 아쉬운 것은 너무 가까이에서 미테랑을 지켜본 탓일까. 비시정권을 위해 일했다는 과거 전력이나 불법도청, 숨겨진 딸 등의 스캔달에 대해선 깊숙이 파고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탈리는 미테랑의 정치가로서의 자질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준다. 정치는 미테랑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이었다. 문인이 되지 못한 것 말고는 다른 일을 못해봐서 후회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치가 진정한 직업이며 따라서 아마추어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일조차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탈리는 미테랑이 민주주의적 정치인으로서 지녀야 할 자질을 모두 갖춘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한다. “비전, 카리스마, 경영능력 세 가지 자질을 모두 갖춘 정치인은 거의 없다. 첫 번째 자질만 갖춘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모호한 이론가다. 두 번째만 갖춘 정치인은 위험한 선동정치인, 세 번째만 갖춘 정치인은 상상력이 없는 보수정치인이다.” 미테랑이야말로 이 세 가지 자질을 모두 갖춘 정치인이었다는 것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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