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처> 박소연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9800원
<눈부처>는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 공모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이다. 당시의 제목은 ‘김 선생의 딸’. 비전향 장기수인 ‘김 선생’과 그의 딸 ‘채현’이 주인공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좌익운동에 투신했던 지식인이 분단과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의 시기를 거치면서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 간다는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익숙한 편이다. <눈부처>의 개성은 그런 인물을, 그로 인해 가난과 불행을 감내해야 했던 가족, 특히 자식들과 대면시킨다는 데에 있다. 끝내 전향을 거부하는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는 내게 벽입니다”라고 말하는 아들도 그러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처지로 스스로를 내모는 딸 채현의 존재야말로 문제적이다. 채현은 이념의 인간인 아버지로 하여금 그 이념의 물질적 기반을 냉철하게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인물이다. “나는 늘 취해 있고, 아버진 깨어 있어요”라는 알코올 중독자 채현의 말은 제 아무리 숭고한 이념이라도 타락한 현실을 무시하고서는 온전한 것일 수 없음을 아프게 일깨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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