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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변혁운동 지나 혼돈 속으로 간 <낯선 사람들>

등록 2007-01-12 17:22

김영현 새 장편 비관적 세계관 자욱
작가 김영현(52)씨가 <폭설> 이후 4년 만에 새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을 내놓았다.

이른바 ‘김영현 논쟁’으로 불리며 90년대 문학의 정체성을 둘러싼 평단의 뜨거운 논란을 낳았던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1990) 이후 김영현씨의 소설에는 늘 70, 80년대 변혁운동에 가담했던 작가 자신의 체험이 짙게 반영되어 있었다. 소설로서는 가장 최근작이라 할 <폭설>에서도 변혁운동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흐름과 그에 몸 담은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적 파장 사이의 길항이라는 김영현 소설의 핵심은 여전했었다.

그러나 신작 <낯선 사람들>에서는 작가가 그와 같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에서 일부러 멀어지려는 의도가 만져진다. 소설 속에서 아마도 70년대 중반의 ‘인혁당 사건’으로 짐작되는 조직 사건의 희생자에 관한 언급이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소설의 전체 주제와 별다른 유기적 관련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낯선 사람들>에서 작가는 초월자의 존재 여부, 인간의 신성과 악마성, 구원과 저주, 운명의 필연과 우연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겨냥한다. 탐욕스럽고 잔혹한 아버지가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큰아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되는가 하면, 신학 공부를 하는 또 다른 아들이 사건의 숨은 비밀을 파헤치며 존재론적 고민에 사로잡히는 구도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오르게도 한다. 여기에다가 후처와 데려온 자식, 그리고 식모를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들의 ‘수컷으로서의 알력’ 등이 포개지면서 소설은 한 바탕 지옥도를 펼쳐 보인다.

지난 시절 한때 인간 이성과 그에 입각한 변혁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그를 위해 몸을 던졌던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세계의 합리적 설명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표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이성과 실천에 의한 변혁 가능성을 대신해서 초월자의 섭리와 권능에 의지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 두 가지 길이 모두 봉쇄된 채 절망과 혼돈이 지배하는 막다른 골목이 작가에게 포착된 지금의 세계상이다.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신학도 성연이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나의 생은 과연 가치 있는 그 무엇일까?’ 하는 심각한 회의를 곱씹는 결말에 작가의 비관적 세계 인식은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실천문학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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