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하는 장자>기세춘 옮김. 바이북스 펴냄. 3만원.
잠깐독서/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장자는 장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고전 번역에 몰두해온 기세춘 선생이 새로 완역한 장자를 펴내면서 일갈했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장자가 너무나 오랫동안 크게 왜곡돼 왔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현재 책방에 꽂혀있는 노자·장자 번역서들을 모두 수거해 불살라 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가 주장하기에, 왜곡은 크게 두갈래로 이뤄졌다. 하나는 권력 차원의 왜곡이요 또 하나는 오역이다.
권력 차원의 왜곡은 2~3세기 중국의 위진 시대부터 시작됐다. 조조는 당시 도교 세력을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 왕필을 시켜 노장 사상을 권력 친화적인 내용으로 왜곡했다. 도교를 국교로 삼은 당나라도 불온한 반체제적인 내용을 끊임없이 윤색했다. 우리나라 번역서들은 대부분 왕필의 왜곡된 주해를 답습했다. 노장 사상의 근본정신은 고통받는 민중을 대변한 ‘저항 담론’인데도 말이다.
또 한 갈래의 왜곡은 고문자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다. 장자가 쓰인 당시에는 글자 수가 수천자에 불과해 뜻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많은 번역본들이 현재 쓰이는 한자의 뜻으로 해석하려다 보니 터무니없는 오역이 일어났다. 노장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 한문 실력만으로 번역해 생긴 왜곡은 말할 것도 없겠다.
예를 들면, 기존의 책 중 하나는 12장 천지편 중 ‘泰初 有無無 有無名’ 부분을 ‘천지의 시초에는 무(無)가 있었다. 존재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이름(名)도 없었다’로 해석하고 있다. 정확한 해석은 ‘태초에는 無도 없었고, 名도 없었다’가 맞다는 것이다. 훨씬 뜻이 잘 통한다.
저자는 이런 오역과 왜곡을 젊은 학자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촘촘한 인맥의 그물에 얽힌 그들이 스승이나 선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눈치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칠십 노인인 내가 나섰지요.” 원래 장자는 ‘저술의 귀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글을 잘 썼다. 이런 글을 오역 없는, “군더더기 없는 곧고 맑은 글”(김규동 시인)로 옮겼으니 읽는 재미가 있다. 장자가 훨씬 더 가까워진 듯하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촘촘한 인맥의 그물에 얽힌 그들이 스승이나 선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눈치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칠십 노인인 내가 나섰지요.” 원래 장자는 ‘저술의 귀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글을 잘 썼다. 이런 글을 오역 없는, “군더더기 없는 곧고 맑은 글”(김규동 시인)로 옮겼으니 읽는 재미가 있다. 장자가 훨씬 더 가까워진 듯하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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