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잉>장노일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1만원.
섬진강변에서 살던 어린시절
작가 꿈꾸던 낚시 소년
5년간 장르소설 쓰며 생계 겸 습작
“생태소설 관념성 탈피하려 했다”
작가 꿈꾸던 낚시 소년
5년간 장르소설 쓰며 생계 겸 습작
“생태소설 관념성 탈피하려 했다”
책·인터뷰/낚시소설 ‘타잉’ 쓴 장노일씨
‘그때 호철은 아버지와 함께 무주의 남대천에서 플라이낚시를 하고 있었다. 강물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그들의 곡을 연주했고 아버지는 그 리듬에 맞춰 캐스팅(라인던지기)을 했다.…호철은 강물 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에게 정신을 빼앗겼다.…호철이 다슬기를 찾느라고 강바닥을 더듬는 사이 아버지는 어느새 작고 귀여운 물고기를 한 마리 낚았다.…언제나 그렇듯 물고기를 릴리즈(다시 놓아주는 것)하는 것은 호철의 몫이었다.…“넌 틀림없이 훌륭한 낚시꾼이 될 거야.…”
‘소년’은 커서 낚시꾼이 되지는 않았다. 대신 ‘낚시’를 소재로 첫 장편소설을 써냈다. ‘강물과 교감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란 부제와 함께 생태환경소설을 표방한 <타잉>(열매출판사 펴냄)의 작가 장노일(34)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실제로 자란 곳은 섬진강변 하동의 갈꽃마을, 10살 때 아버지한테 낚시를 배워 봄·가을 산란을 하러 역류해온 은어나 농어를 잡으며 놀곤 했단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유명해진 플라이낚시는 1999년에야 배웠고 그 이전까지는 우리 고유의 견지낚시를 즐겨했다. ‘타잉(Tying)’은 플라이낚시를 할 때 지렁이처럼 살아있는 생물 미끼 대신, 갖가지 동물이나 새의 깃털을 낚싯바늘에 감아 가짜 날벌레를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지만 작가가 될 거라고 스스로 믿었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 독문학을 하면서 물고기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졸업해 취직하고 결혼하고 생활에 파묻혀 잊고 있었죠. 그런데 5년 전쯤 금강에서 만난 한 플라이낚시인의 얘기에서 다시금 영감이 떠올랐어요.”
당시 금강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눈불개(눈이 붉은 물고기)’의 출현 소식을 듣고 모여든 낚시인들 사이에서 만난 그 익명의 고수는 모든 플라이낚시인들이 꿈꾸는 물고기는 ‘곤들매기(white spotted char·홍송어)’라고 소개했다. 같은 연어과의 산천어보다 더 상류의 찬 계곡그늘진 바위틈에 살며 계류의 맹수로 불리는 곤들매기는 동해로 흐르는 최북단 하천 상류에 살았으나 1970년대초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갈색 바탕에 흰 반점이 특징으로 북한에서는 ‘산이면수’로 불리며 지금도 서식중이다.
소설은 ‘전설적인 물고기’ 곤들매기의 출현 기사를 보고 전국의 플라이낚시 고수들이 강원도 내린천 상류의 한 오두막집으로 모여들면서 시작한다. 곧이어 가짜로 판명됐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그들은 저마다 ‘감’과 ‘은밀한 목적’을 갖고 온 것이다. 오지여행팀의 리더인 ‘타이맨’, 예술타잉이란 별명답게 국내 최고의 솜씨를 가진 미모의 여성 ‘메이’, 희귀종 전문 밀반출꾼을 쫓는 환경경찰 ‘은백’, 전일본플라이낚시대회 우승자인 ‘박프로’, 명성 높은 뱀부로드 빌더(대나무낚싯대를 만드는 장인) ‘조명길’,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이라는 ‘꺽지’, 요리와 산야채 전문가인 거구의 ‘빅베어’, 갖가지 첨단장비로 동식물 자료 분석과 기록을 하는 곤충학자 ‘Mr 지오’ 등등등. 내린천 깊은 숲을 날아다니는 12살 벙어리 소년 ‘길잡이 늑대’, 플라이낚시 1세대로 조성(낚시의 성인)으로 불렸으나 10여년 넘게 실종상태인 ‘신기찬’ 등등등.
소설 맨 앞에 등장인물들을 친절하게 소개해 놓은 형식,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기법, 전설·고수·도인 같은 신비스러운 용어들, 거기에 유일한 여성을 둘러싼 미묘한 삼각관계까지 골고루 갖춘 덕분에 글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단숨에 익힌다. “지난 5년동안 습작 겸 생계 겸 장르(무협판타지)소설을 써 온” 작가의 이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은, 강물, 바람, 새, 곤충, 바위, 나무, 햇빛 등등 숲을 이루는 갖가지 생물의 생태와 지형적 특징을 묘사하고 그들을 매개로 ‘사건’을 엮어가는 감각이다.
“자연과 인간의 소통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자연이 좋아하는지’ 모르고, 실제로는 괴롭히고 파괴하고 있잖아요?” 우리 낚시인구만해도 350만~700만명을 헤아리지만 ‘낚시문학’은 번역본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 정작 ‘생태주의’를 표방한 작품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주장성이 강해 대중과 멀어져 있기도 하다. 그 자신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낚시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보겠다는 의욕은 단단해보인다.
글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박종식 anaki@hani.co.kr
「타잉」의 저자 장노일씨
깃털을 낚시 바늘에 감아 가짜 미끼를 만드는 과정이 타잉이다.
글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박종식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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