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박완서 지음. 열림원 펴냄. 9800원
어느 꽃도 섭섭지 않게 말 거느라 수다쟁이가 되고
100식구 출석 부를 떄마다 가슴을 기쁨으로 뛰놀게 하는 마당
앞뜰을 가꾸며 호미로 캐낸 ‘박완서 산문집’
100식구 출석 부를 떄마다 가슴을 기쁨으로 뛰놀게 하는 마당
앞뜰을 가꾸며 호미로 캐낸 ‘박완서 산문집’
원로 작가 박완서(76)씨가 <두부> 이후 5년 만의 신작 산문집 <호미>를 펴냈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책머리에’)
박완서씨의 새 산문집에서 호미는 삶을 경영하는 태도에 대한 비유로서 동원되었지만, 책에는 실제로 ‘호미 예찬’이라는 제목의 글도 들어 있다. 아파트의 과도한 안락이 싫어서, “나에게 맞는 불편을 선택하고자”(29쪽) 뜰이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작가에게 호미는 집의 앞뜰에서 풀과 나무를 가꿀 때 주로 쓰는 농기구다. 그는 어느 날 철물전에서 만난 호미의 실용성과 완미함에 반한다.
“주로 여자들이 김 맬 때 쓰는 도구이지만 만든 것은 대장장이니까 남자들의 작품일 터이나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49쪽)
산문집의 앞부분은 그렇게 호미를 들고 하루 한두 시간씩 빠짐없이 앞뜰을 일구면서 퍼 올린 생각들을 담았다. 그리 넓지 않은 터임에도 이른 봄의 복수초에서부터 시작해 상사초, 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매화, 살구, 자두, 앵두, 조팝나무 등 무려 100여 가지의 꽃을 철 따라 피워 내는 작가의 앞뜰은 그가 자연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유를 씨 뿌리고 가꾸는 사유의 텃밭이기도 하다.
“작년에 그 씨들을 받을 때는 씨가 생명의 종말이더니 금년에 그것들을 뿌릴 때가 되니 종말이 시작이 되었다. 그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 시작과 종말이 함께 있다는 그 완전성과 영원성이 가슴 짠하게 경이롭다.”(45쪽)
“땅은 내가 심거나 씨 뿌리는 것한테만 생명력을 주는 게 아니다. 바람에 날아온 온갖 잡풀의 씨앗, 제가 품고 있던 미세한 실뿌리까지도 살려내려 든다.”(55쪽)
씨앗이 품은 시작과 종말
씨앗이 알려주는 생명의 완전성과 영원성, 땅의 차별 없는 사랑을 접한 작가에게 텃밭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큰 눈이 내려 덮인 뜰에서도 가장 먼저 눈이 녹는 곳이 복수초 언저리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비 맞고 쓰러져 있는 풀꽃을 일으켜 세워주며 바로 서 있으라고 짐짓 엄하게 야단칠 때 식물은 그저 식물일 뿐만 아니라 자식이자 친구이며 생의 교사이기도 하다. 그는 풀과 나무를 상대로, 또 그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일년초 씨를 뿌릴 때도 흙을 정성스럽게 토닥거려주면서 말을 건다. 한숨 자면서 땅기운 듬뿍 받고 깨어날 때 다시 만나자고, 싹 트면 반갑다고, 꽃 피면 어머머, 예쁘다고 소리내어 인사한다. 꽃이 한창 많이 필 때는 이 꽃 저 꽃 어느 꽃도 섭섭지 않게 말을 거느라, 또 손님이 오면 요 예쁜 짓 좀 보라고 자랑시키느라 말 없는 식물 앞에서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15쪽)
제 차례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얼굴을 내미는 꽃들을 두고 작가는 출석부를 떠올린다.
“내가 출석을 부르지 않아도 그것들은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것들이 올해도 하나도 결석하지 않고 전원출석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들이 뿌리로, 씨로 잠든 땅을 함부로 밟지 못한다. 그것들이 왕성하게 자랄 여름에는 그것들이 목마를까봐 마음 놓고 어디 여행도 못 할 것이다. 그것들은 출석할 때마다 내 가슴을 기쁨으로 뛰놀게 했다. 100식구는 대식구다. 나에게 그것들을 부양할 마당이 있다는 걸 생각만 해도 뿌듯한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이렇게 사치를 해도 되는 것일까. 괜히 송구스러울 때도 있다.”(38~9쪽)
풀과 나무, 꽃을 상대로 수다스럽게 말을 나누던 작가는 인간 세상의 거칠고 속된 말, 거짓되고 허망한 말에 지쳐 침묵을 그리워한다. 급기야 수녀님들을 따라 열흘 간의 묵언 수행에 들어간다. 한마디 말도 없이 지낸 열흘은 그러나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그렇게 평화롭고 감미로운지는 처음 알았다.”(92쪽)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야말로 신이 아닐까”(93쪽) 깨닫는 대목에서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에 관한 ‘경전’ <침묵의 세계>가 떠오르기도 한다. 묵언 수행이 끝났을 때 폭죽처럼 터진 말과 웃음과 노래를 두고 침묵이 피워낸 꽃이라 표현하는 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혀가 풀리자 식당 안은 마치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포옹했다. 그건 말이 아니라 침묵이 터뜨린 폭죽이었다. 침묵이 피워낸 꽃이었다. 백화난만한 꽃밭.(…)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94쪽)
헛된 말이 제 고향 침묵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작가 역시 자신의 고향인 개성 박적골을 향한 그리움을 산문집 곳곳에 쏟아 놓는다. “그 시절의 유학자로는 드물게 아들 딸, 손자와 손녀를 차별하지 않으셨”(168쪽)던 할아버지, 장대비로 개울이 불어나자 어린 작가를 업어서 건네 주었던 동네 머슴 호뱅이, 참게 암컷의 검은 장이 선사하던 “맛의 오지, 궁극의 비경”(185쪽)이 두루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특히 비 오는 날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먹곤 하던 메밀 칼싹두기는 생의 고독과 위안을 함께 알려주었던 음식이다.
“삶을 무사히 다해 간다는 안도감”
“벽촌의 비 오는 날의 적막감은 내가 아직 맛보지 못한, 그러나 장차 피할 수 없게 될 인생의 원초적인 고독의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176쪽)
“땀 흘려 그걸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뱃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듯해지면서 좀전의 고적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이렇게 화목한 집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기쁨인지 감사인지 모를 충만감이 왔다.”(178쪽)
책 후반부에는 작가의 등단작인 <나목>의 주인공 모델이 된 화가 박수근, 시조 시인 김상옥, 소설가 이문구 등 생전에 작가와 교분을 나누었던 고인들, 그리고 역사학자 이이화씨와 조각가 이영학씨, 맏딸인 수필가 호원숙씨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회고의 글들이 실려 있다.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아마도 삶을 무사히 다해간다는 안도감나잇값 때문일 것이다.”(‘책머리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호원숙
저자 박완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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