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image/s3,"s3://crabby-images/4a888/4a888a77c6cfe51a279ad3a98f22de60c8c8b3fc" alt="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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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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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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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인류가 그러했듯, 이 긴 정착민 시대가 지나고 나면 미래의 세계는 다시 노마드의 세계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자크 아탈리는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유목’이야말로 인류의 본성이며, 600만 년에 이르는 인류 진화의 역사 전체로 보면 지난 5000년 동안의 ‘정주’는 이 본성에서 잠시 벗어난 일종의 일탈일 뿐이며, 유목이라는 본성으로 인류가 이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류의 모든 과거사를 ‘노마디즘’(유목주의)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것이자 앞날을 이 개념으로 예측하는 책이다. 그러니까 특이한 형식의 역사 개론서이자 미래학적 진단서인 셈이다. 주의할 것은 노마디즘이라는 일반용어를 독창적인 철학적 개념어로 정착시켜 널리 유포한 질 들뢰즈의 노마디즘과 아탈리가 쓰는 노마디즘이 별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들뢰즈는 코드화하고 영토화하는 지배체제의 포획 메커니즘에서 탈주하고 거기에 저항하는 삶의 형식을 노마디즘으로 설명했지만, 아탈리는 노마디즘을 훨씬 더 일반적이고 시사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에게 노마디즘의 본질은 ‘여행’이다. 한곳에 정주하기를 거부하고 끝없이 이동하는는 것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노마디즘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류사의 99.9%는 노마디즘의 역사다. 끝없이 이동하고 유랑하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인류 문화의 거의 모든 유산, 곧 불·사냥·언어·농경·목축·신발·연장·제식·문자·예술·바퀴·항해 따위를 창조했다. 심지어 유일신과 시장과 민주주의조차 이들이 발명했다. 이들이 만들지 않은 것, 다시 말해 정착민 고유의 창조물은 국가와 세금과 감옥과 대포 같은 것에 그친다.
지은이의 용법을 따르면 자본주의도 ‘임금과 이윤의 노마디즘’이다. 이건 서양에서 12세기 무렵 봉건주의라는 정주성에 대항해 항구도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자본주의적 노마디즘이 퍼지면서 세계화가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7세기의 상업적 세계화, 18세기 말의 산업적 세계화, 그리고 2차대전 후의 세계화가 그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거부 현상은 노마드(유목민) 세력이 정착민 세력보다 우세해지려 할 때마다 나타났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세계화는 필연이다. 미국은 최후의 비노마드적인 정주성 제국이지만, 머잖아 이 제국도 시장이라는 거대한 노마드 제국에 굴복할 것이다. 시장 제국은 개별 국가를 ‘대상행렬’을 끌어들이려고 서로 경쟁하는 ‘오아시스’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 시장 제국에 대항해 ‘이슬람’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노마드 제국’이 나타난다. 두 제국은 치열한 싸움 끝에 둘 다 무너질 것이다. 이어 최후의 노마드 제국인 민주주의가 고대 로마 제국을 대체하듯 서서히 세계를 제패할 것이다. “내일의 세계는 민주주의적인 동시에 종교적이면서 상업적인 곳이 될 것이다.” 그의 예측은 비관을 지나 낙관에 이른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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