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고세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1만7000원
고용 중심의 ‘생산적 복지’만 강조하는 한국사회
올해 복지예산도 서유럽 선진국의 1/4을 밑돌아
민주주의가 복지제도화 담보 못하는 극명한 사례 될지도
국가복지 확충·기업지배구조 개혁 더불어야 복지한국 온다
올해 복지예산도 서유럽 선진국의 1/4을 밑돌아
민주주의가 복지제도화 담보 못하는 극명한 사례 될지도
국가복지 확충·기업지배구조 개혁 더불어야 복지한국 온다
“‘복지국가 위기론’은 부자들의 반란이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한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말, 복지국가에 관한 한 권의 책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작은 책’이었다. 하지만 책이 다룬 주제는 매우 무겁고 큰 것이었다. ‘세계화 시대 복지 한국의 모색’이었다. 기억컨대 책은 머리말에 앞서 두 개의 ‘경구’를 구호처럼 내걸었다.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구절은 바로 그 중 하나다. 지난해 세상을 뜬 <풍요의 사회>의 저자인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갈브레이드의 말이다.
기자는 ‘작은 책’을 2004년 영국에서 처음 접했다. 당시 영국의 한 대학에서 연수 중에 우연히 얻게 된 책은 기자를 단숨에 매료시켰다. 세계화, 복지국가, 한국이란 세 글자를 잇대어 천착했을 뿐만 아니라, 검증없이 너무나 쉽게 유통되고 있던‘복지국가 위기론’의 허실을 조목조목 설파한 점도 눈길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생산적 복지’란 이름 아래 진행된 한국 복지개혁의 내용과 문제점을 논의하면서‘이해관계자’란 새로운 개념에 기대어 복지한국의 전망을 구상한 점이 돋보였다. ‘작은 책’은 바로 <국가와 복지(아연출판부)>였다. 저자는 고세훈 고려대 경상대학 행정학과 교수다. 개인적으로 고 교수의 책은 <영국노동당사(나남, 1999)> 이래 두번 째였다. 1900년 창당에서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영국 노동당사를 상세히 전해준 <영국노동당사>도 밤을 지새며 읽은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고 교수의 신작은 실상 2003년도에 펴낸 <국가와 복지>의 확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복지국가 위기론의 문제점, 한국복지의 현황, 이해관계자 개념의 적용에 따른 복지한국의 모색 등 3장으로 구성된 책을 이번에는 책 크기와 내용 모두 크게 넓혔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이 저서에서 고 교수는 왜 복지국가인가(1부), 세계화와 복지국가 그리고 민주주의(2부), 한국복지의 현황(3부)을 통해 ‘성장이 먼저다’라거나 ‘복지의 민영화가 대세다’란 반복지담론을 비판하면서 한국복지의 현주소를 ‘저발전’이란 특징을 통해 짚었다.
2003년 ‘국가와 복지’ 확대판
고 교수는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민생’은 여전히 고달프고 신산하다면서, 한국은 “민주주의가 복지를 위한 제도화를 자동으로 담보해 주지 못하는 가장 명료한 사례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2007년도 국가예산이 책정한 복지지출은 국민총생산의 6%를 약간 웃돌며, 여전히 서유럽의 복지 선진국의 4분의 1을 넘지 못하는 데다, 극빈층을 위한 공공부조의 규모는 10분의 1에 불과한 저급한 수준이란 지적이다. 고용불안정과 임금불평등의 정도는 너무나 높고, 시민사회는 반복지, 성장지상주의 담론 등 ‘반복지의 덫’에 깊이 침윤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등장하는 ‘시장과 함께하는’ 정치 또는 복지국가 논의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고 교수는 본다. 따라서 요즘 유행하는 사회투자국가 담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고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는 복지를 생산에 연결시키는 담론이며, 자칫 시장논리에 의해 국가복지가 좌우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와 복지>에 이어 신작에서도 그는 한국 복지개혁의 미래와 관련해 ‘이해관계자 복지’를 이야기 한다.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해관계자 복지를 두고 그는 “한 사회의 진정한 복지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복지”라면서 “그것은 시장의 내부자 곧 종업원, 주주, 하청업체 직원, 지역주민,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들 뿐아니라 시장의 외부자 곧 실업자, 장애인, 노약자 등과 같은 시장으로부터 탈락한 이해관계자들의 복지도 포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복지의 중심적 개념인 생산적 복지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생산적 복지는 고용중심의 복지를 구상하는 것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방치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 점에서 고 교수는 특히 신작에서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많은 복지 학자들이 국가복지의 확대를 이야기하는 것까진 좋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 복지의 통합적 발달을 위해선 국가(에 의한 소비적 복지)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노동의 참여) 등 세가지 복지의 축을 아울러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강조한다고 해서 고 교수가‘기업복지’를 주창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는 국가가 복지공급의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노동자가 참여하는 기업지배 구조 개혁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따라서 고 교수는 5부에서 복지한국의 미래 방향에 대해 국가복지의 확충 또는 외적(실질적) 민주화와, 이를 위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또는 내적(절차적) 민주화를 포함하는 ‘이해관계자 복지’를 지향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전문가보다 일반 대중 겨냥
다소 딱딱한 이론서에 가까운 <국가와 복지>에 비해 신작은 복지를 공부하는 대학·대학원생은 물론 일반 대중을 겨냥한 점도 특징이다. 기본 개념부터 되도록 쉬이 설명하려고 한 데다, 각 장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는가 하면, 더 공부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참고문헌 안내도 친절하고 꼼꼼하게 곁들였다.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이란 짤막한 인물 소개로 재미를 더 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기실 국내에는 숱한 대학에 사회복지학과가 있고, 더불어 숱한 사회복지 및 사회정책학자들이 있지만, 또 복지관련 저서들도 엄청나게 쏟아져 유통되지만, 정작 대중에게‘복지국가’가 무엇이고 한국 복지의 현실에 대해 쉽게 이해하도록 한 대중용 서적은 극히 드물다. 한국 지식인사회가 사회복지 및 사회정책에 관심을 기울인 역사가 짧고 숫적으로나 전체적인 역량에서 버거운 바도 있겠지만 ‘대중화’에 소홀히 한 점도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서울 강남구 포이동 판자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그 뒤의 초고가 고층아파트 타워팰리스. 1997년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으로 한국사회가 양극화하면서 복지 확충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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