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베스트셀러> 브라이언 모이너핸 지음·김영우 옮김. 민음in 펴냄·2만원
라틴어 성경을 목숨걸고 민중의 언어로 번역한 뒤
화형대 끌려간 영국 종교개혁가 윌리엄 틴들의 일대기
화형대 끌려간 영국 종교개혁가 윌리엄 틴들의 일대기
과학혁명과 종교개혁은 유럽을 중세의 무지와 억압에서 해방시킨 거대한 변혁이었다. 특히 종교개혁은 그 직접성과 즉각성에서 전례없는 사건이었다. 16세기 초 로마 가톨릭의 수장은 부패와 타락이 극에 이른 사실상의 세속군주였고,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회 조직은 탐욕의 피라미드였다.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비를 마련하려고 교황은 면죄부를 남발했다. 그 시절 썩어 문드러진 교회 안에서 성직을 수행하던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극심한 ‘영혼의 위기’를 겪었다. 30대 중반이 이 땅딸막한 사내는 자신이 죄에 물들어 있다고 자책했다. 아무리 기도를 하고 금식을 하고 고해를 해도 양심의 고통이 가시지 않았다. 괴로움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날 성서를 읽다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구절과 만났다.
그 순간 이 문장이 번갯불처럼 그의 양심을 강타했고, 그를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듯한 경험 속으로 몰아넣었다. 죄는 오직 ‘믿음’으로만 씻길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그를 덮쳤다. 루터는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를 통해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성서 말씀에 대한 믿음만이 구원의 길임을 뼛속까지 확신했다. 1517년 그는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반향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도화선에 불이 붙자마자 종교개혁의 거대한 들불이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1522년 이 개혁 전사는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초판 4000부가 3개월 만에 동이 났다. 독일 민중이 쓰는 생생한 구어체로 쓰인 새 성서는 종교개혁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라틴어라는 속박에서 풀려난 성서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암호문 같은 죽은 말을 주문처럼 외던 교회 권력자들은 이단을 파문하고 진압하는 반개혁으로 맞섰지만, 지식 독점이 권력 독점을 보장하던 시대가 저무는 것을 끝내 막지 못했다.
루터의 종교 혁명은 바다 건너 영국에도 즉각 폭풍우를 불러일으켰다. 루터의 선동적인 글들이 밀려들자 영국의 보수파 권력자들은 그의 책들을 불태웠다. 그러나 한번 타오른 변혁의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시대에 가톨릭 교회에 맞서 새로운 사상을 옹호하고 전파하는 데 삶의 전부를 바친 영국의 종교개혁가가 윌리엄 틴들(1484~1536·사진)이다. 영국의 저술가 브라이언 모이너핸이 쓴 <신의 베스트셀러>는 틴들의 삶을 줄거리로 삼아 종교개혁과 성서 번역을 둘러싸고 터진 영국 내부의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그린 책이다. 신학자였던 틴들이 역사에 남은 것은 처음으로 성서를 영어로 번역해 출간한 탁월한 번역가였기 때문이다. 그가 번역한 성서는 오늘날 쓰이는 영어 성서의 모본인 <킹 제임스 성경>(1611년)의 원형이 됐다. 민중의 생생한 언어를 뛰어난 표현력으로 구사한 그의 번역어는 오늘날에도 거의 그대로 통용된다.
당시 영국에서 성서 번역은 그 자체로 ‘종교적 반역’이었다. 교회 권력에 비판적이었던 개혁가들은 민중이 계몽되기를 바랐고, 성서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하는 것에 사명감을 느꼈다. 틴들 이전에도 ‘번역이라는 반역’이 간간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교회는 ‘성경 번역’을 이단적 범죄로 규정해 화형에 처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존 위클리프의 개혁운동 흐름 속에 있었고 루터의 혁명에 직접 영향을 받은 틴들은 성서 번역을 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반역자가 된 이 번역자는 독일로 망명을 떠나 11년 동안이나 은신처를 바꿔가며 성서 번역에 매진했다. 신약성서 영어판은 영국으로 밀반입돼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번역은 교회와 신앙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일이었다. 그는 ‘교회’를 ‘회중’으로 번역함으로써, 가톨릭 제도로서 교회가 아닌, 믿음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야말로 진정한 교회임을 천명했다. 또 ‘사제’를 ‘장로’로 옮겨 사제 권력을 부정했다. 또 ‘고해’를 ‘회개’로 바꾸었다. 사제 앞에서 행하는 ‘고해’가 아니라 신 앞에서 행하는 ‘회개’만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믿음의 반영이었다. 그것은 신과 인간의 개별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었고, 기독교 안에 개인이 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또 전통적으로 ‘자선’으로 번역되던 것을 ‘사랑’으로 바꾸었다. 위에서 아래로 시혜를 배푸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사람들 사이의 교류라는 뜻을 품은 이 말은 평등의 사상을 품고 있었다. 그의 번역 혁명은 결국 그를 망명지에서 붙들어 화형대로 끌고 갔지만, 머잖아 그는 최고의 성서 번역가로 추앙받는 자리에 올랐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윌리엄 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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