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남자, 나무 여자> 은미희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9000원
이 소설은 엇갈리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엇갈리는 사랑’이란 필경 경우 동어반복이기 십상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밤의 꿈>에서부터 롤랑 바르트의 에세이 <사랑의 단상>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본질이 곧 어긋남이라는 인식은 낯설지 않다. 소설에서 외식산업체에 근무하는 남자 은수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 우영을 짝사랑한다. 우영은 바람 같은 남자 동인을 해바라기처럼 좇고, 은수의 동거녀인 연상의 미혼모 서 마담은 은수의 마음을 잡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낱낱이 감시당하고 통제당하는 이 복제와 감시의 시대에서 다시 사람의 시대로 환원시켜주는 것은 사랑뿐”(21쪽)이라는 믿음은 이들 모두가 공유하는 바다. 문제는 그 사랑의 겨냥이 한없이 미끄러진다는 것. 흡사 해체론에서 말하는 기호의 본질처럼. 소설 제목은 사진작가 동인과 우영을 가리킨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영은 동인의 낡은 아파트로 돌아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동인을 기다리리라”(272쪽) 다짐한다. 바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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