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를 만나다> 김영욱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9000원
걸출한 선사들의 사례 통해 ‘화두’를 화두 삼아 설명
“모든 걸 단칼에 쳐 없애고 아무것도 안 남을때 깨달음 와”
“모든 걸 단칼에 쳐 없애고 아무것도 안 남을때 깨달음 와”
불교가 재발견되고 선수행이 새로이 대중화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입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화두’라는 두 글자다. 그러나 세상에 알쏭달쏭한 말치고 ‘화두’에 어깨를 견줄 말도 달리 찾기 어렵다. 불교철학 연구자 김영욱(가산불교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씨가 쓴 <화두를 만나다>는 백짓장 같기도 하고 깜깜한 밤 같기도 한 ‘화두’라는 말을 주제로 잡아 선불교의 걸출한 선사들의 사례를 들어 비교적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화두가 설명도 해답도 끊긴 자리에서 오직 의심 중에 붙드는 것이라면, 이 책은 화두의 본성을 배반해 화두를 이야기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화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눈앞에 걸어놓고 자나깨나 궁구하는 말이다. 성철 스님의 ‘이 뭐꼬?’, 조주 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나 ‘차나 마시게’ 같은 말이 화두가 된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화두는 철거도구다. 모든 인식, 이론, 교설의 보금자리를 쳐부수고 그 어디에도 안주할 곳이 없게 만드는 것이 화두다. 다른 말로 하면 화두는 관문이자 빗장이다. 화두는 오래 거주했던 생각의 자리를 털고 나와 새로운 인식으로 나아가는 데 관문 노릇을 하며, 동시에 그 관문을 걸어 잠그는 빗장이기도 하다. 탄탄대로인 줄 알았는데 오리무중인 것이 화두의 세계다.
선은 중국 불교에서 꽃피었지만, 인도 불교에서 이미 널리 쓰이던 수행법이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 불교를 널리 퍼뜨렸다는 달마 대사가 한 것도 전통의 좌선이었다. 여섯 번째 조사 혜능(638~713) 시대에 이르러 인도식 좌선을 대체한 획기적인 선법이 출현했으며, 그 뒤 조사들의 언행을 깨달음의 지표로 삼는 조사선이 성립했고, 이 조사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화두를 붙들고 수행하는 간화선이라고 한다.
화두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유는 ‘은산 철벽’이다. “얼음으로 덮여 우뚝 솟은 은산은 오르기 어렵고, 강철로 막힌 철벽은 뚫고 나가기 힘들다.” 화두를 붙든다는 것은 이 은산 철벽 앞에 선다는 것을 뜻한다. “책 속에서 얻은 정보, 명망가들의 가르침, 각종 철학이 전하는 인식의 틀, 경전의 다양한 교설” 같은 온갖 지식을 내던지고 무장해제된 정신으로 서는 것이다. 무장해제된 사람이 화두와 맞서서 대결하는 것을 ‘공부’라 한다.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고 백척간두에 홀로 서서 온갖 헛된 지각, 그릇된 인식을 깨부수는 것이야말로 공부다.
육조 혜능의 ‘바람인가 깃발인가’는 어떤 타성적 해답에도 의지하지 않는 선의 본디 모습을 보여준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며 논쟁이 그치지 않는다. 혜능이 그 광경을 보고 말한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바로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모든 것을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로군”하고 결론짓는 건 혜능에게 한방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반대로 생각하는 것도 혜능의 뜻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지은이는 말한다. “움직인다고 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거나 모두 올가미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 노출돼 달아날 길이 전혀 없게 되면 바람과 깃발을 둘러싸고 제시된 말 하나하나가 모두 온전한 화두로 반전된다.”
이 진퇴유곡의 상황은 수행자가 화두를 제대로 붙들었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이제 이 수렁을 빠져나갈 길을 알려주겠다고 유혹하는 것들이 다가오는데 그게 모두 미망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라는 임제 선사의 말은 이 대목을 가리킨다. 깨달음이란 뭘까. 빈 손바닥을 오무려 주먹 안에 감춘 것과 같다. 주먹을 펴면 아무것도 없다. 단도직입, 일도양단, 쾌도난마의 정신이 화두의 정신이다. 모든 것을 단칼에 쳐 없애고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거기에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그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 책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가 스스로 얻어야 할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세상에서 가장 알쏭달쏭한 두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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