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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뽀샵 사진’ 속 나는 나일까 아닐까

등록 2007-05-19 14:15수정 2007-05-19 14:22

철학의 진리나무. 안광복 지음/궁리·1만원
철학의 진리나무. 안광복 지음/궁리·1만원
상식을 도발하는 철학적 물음으로
뽀루지 난 아이들과 ‘생각의 향연’
게임중독 아이도 어느새 철학자
‘초두효과’란 게 있다. 먼저 들어온 정보를 강렬하게 기억해서 첫인상이 중요하단 사실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우리에게 각인된 철학의 첫인상은 어떨까.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향연’ ‘전문철학자들만의 형이상학’쯤으로 밀쳐두고픈 골칫거리가 아닐까. 만약 철학책으로 〈철학의 진리나무〉를 처음 접했다면 철학에 대한 ‘초두효과’는 정반대로 달라졌을 것이다. ‘이해하려 들수록 재미난 생각의 향연’ ‘아마추어 철학자들의 형이하학’이라고 말이다.

대중적 글쓰기로 정평이 난 ‘철학 박사’ 고등학교 교사 안광복씨가 일상에 널려 있는 철학을 조리 있게 주워 담았다. ‘상식을 도발하는 물음’은 편할 리 없다. 그러나 당혹스런 주제 앞에 아이들은 환호했다. ‘불편한 편안함’을 받아들일 줄 아는 아이들의 마음엔 철학의 씨앗이 자라났다. ‘방법적 회의’란 바로 그런 것, 철학 선생님은 뾰루지 난 ‘아마추어 철학자들’과 뒹굴고 놀며 ‘임상 철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의 흙을 돋우어 ‘철학의 진리나무’를 키웠다.

생각의 줄기를 뻗고, 편견이라는 가지를 치고, 진리의 열매를 따고, 사유의 낙엽들을 밟는 즐거운 여행에 나서기 전 지은이는 먼저 ‘정신의 준비운동’을 권한다. 빡빡한 공부 스케줄을 탓하지 마라. “인생이 단 5분 남았더라도 철학함에 쏟은 2분은 나머지 3분을 30분같이 가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들러리일 뿐이다. ‘선과 악’ ‘보수와 진보’ ‘노동’ ‘시간’ 등의 쉬운 듯 쉽지 않은 화두를 붙잡고 현실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예컨대, 원본 없는 가짜 ‘시뮐라크르’는 공허한 철학용어가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로 설명된다. 얼짱으로 변신시키는 ‘뽀샵질’, 목소리를 조작해 매끈한 노래를 만드는 ‘음반 조작’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곰곰 고민하다 보면 어느덧 ‘생각의 곁가지’란 팁에 이른다. “e-스포츠는 스포츠니?” 게임중독 아이로 하여금 철학자가 되게 한다. 놀이가 철학의 소재이고 보면 참 별것 아닌 철학이다.

그러나 사는 게 그렇듯 철학의 밑동을 파면 정답 없는 고민투성이다. ‘이상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일하기 위해 노는가, 놀기 위해 일하는가.’ ‘법은 인간 이상의 최후 보루인가, 이기주의의 보호막인가.’ 유토피아의 이상이 도그마로 변할 때 역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민주주의의 탈을 쓴 법이 이익집단에 끌려 다닐 때 사회는 어떻게 되는지 책은 끊임없는 생각의 잔가지를 만들어낸다.

생각을 가다듬었으면 제4부에서 ‘진리의 열매’를 딸 차례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움직이는 주제’로 철학하기.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서 자유의 의미를, ‘네이스 대소동’에서 빅브러더 세상의 빛과 그늘을, ‘새만금’에서 생태와 경제의 손익계산서를, 그야말로 세상에 대한 올바른 사고를 위한 임상철학의 단계다.

논술교양서라고 독자 대상을 묶을 필요가 없다. “삶에 철학만한 치료제가 없더라”는 지은이의 말마따나 책을 덮으면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는 이마누엘 칸트의 물음을 누군들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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