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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대를 가로지른 백가쟁명의 마당

등록 2005-03-25 14:56수정 2005-03-25 14:56

 책세상문고·우리시대 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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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문고·우리시대 100권 \\
책세상 출판사의 문고본 시리즈 ‘책세상문고·우리시대’가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전쟁>(구춘권 지음) 출간으로 100권을 돌파했다. 2000년 4월 탁석산씨의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첫발을 뗀 지 5년 만이다.

‘우리시대’는 손아귀에 딱 잡히는 분량, 늘어지지 않는 호흡, 직진하는 명쾌한 서술로 우리 출판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삼중당 문고’로 대표되던 앞 시대의 명맥이 거의 끊기다 시피했던 때에 ‘새삼스럽게’ 등장한 ‘우리시대’는 이 장르를 부활시켰다. 책세상문고의 성공으로 ‘살림지식총서’(살림출판사)를 비롯한 여러 문고본이 등장했다.

‘우리시대’는 문고본을 되살리되 성격이 뚜렷한 방식으로 되살렸다. 그때까지 주로 문학 분야에, 그것도 외국 문학에 치우쳤던 문고본의 관성을 거슬러 시대와 대결하는 지식·사상을 주요 품목으로 삼은 것이다. 첫쨋권 <한국인의 정체성>부터가 많은 지적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둘쨋권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전재호 지음) 또한 논쟁의 숲을 에두르지 않았다. 말하자면 ‘우리시대’는 책으로 만들어가는 쟁론의 마당이었다.

문고본 명맥 이어 5년만에 100권째
명쾌한 서술로 출판역사 새 이정표

이 시리즈의 더 중요한 특징은 소장학자들을 대거 필자로 불러들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100권 필자의 80%가 이 시리즈를 통해 처음으로 얼굴을 알린 ‘새내기 필자’였다. “국내에 박사급 필자는 6만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글을 발표할 공간은 거의 없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판사에서 선뜻 불러주지 않는다. 문제의식도 충만하고 의욕과 투지도 넘치는데, 풀어놓을 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이 문고의 필자로 모셨다.” 시리즈를 기획한 김광식 책세상 편집주간은 이 공간을 젊은 연구자들의 발언대이자 학문적 이슈의 분출구가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는 숨어 있는 필자를 찾아내 지식의 무림에 들여보내온 셈이다. 필자들은 200자 원고지 700~800장 안에 자신만의 관점을 밀도 높게 서술해 그동안 연마한 초식을 선보인다. 저마다 개발한 날렵한 품새로 논리의 칼을 쓰고 설득의 권법을 펼친다. 바람처럼 등장한 자객이 비수를 날리기도 한다. 젊은 경제학자 홍기빈씨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로 주류 경제학을 가차없이 치받고, 정치학자 김욱씨는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로 역대 대통령의 통치술을 해부한다.


이 시리즈가 논쟁적 공간이 된 것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끌어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진보건 보수건 우리 사회는 지식 역량이 취약하기 때문에 탄탄한 논리를 갖춘 필자라면 두루 받아들인다”는 게 기획자의 생각이었다. ‘공격적일 정도로 강한 자기주장’이 ‘선명한 논리’와 만나 벌어진 말들의 백화제방이 이 시리즈인 셈이다. 이 문고본을 통해 역량을 인정받은 상당수의 필자들이 이후 여러 곳에서 논객으로 혹은 저술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사상 ‘치받고 헤집고’
숨어있는 필자들 논쟁의 장 불러모아

100권째로 나온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전쟁>은 2001년 9·11테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테러리즘의 양상을 ‘메가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미국의 패권전략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규명하는 책이다. 메가테러리즘은 이 책에서 지은이가 처음 쓴 말인데, 상징적 인물을 제거함으로써 목적을 이루려 했던 과거의 테러리즘과 달리 무차별로 인명을 살상함으로써 충격과 공포를 극대화하고, 그럼으로써 적의 권력체계를 아래로부터 와해시키려는 최근의 테러리즘을 가리킨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한, 절망적 선택에 내몰린 주변부 세계의 메가테러리즘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지은이는 경고한다.

‘우리시대’ 문고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편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6만부가 넘게 팔렸고, 다른 책들도 보통 5천~1만 부 가량 팔렸다. 100권 전체로 쳐서 모두 65만 부가 나갔다고 한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출판사는 2002년도에는 ‘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를, 2003년도에는 ‘책세상문고·세계문학’을 잇따라 출범시켰다. 사상의 고전을 핵심만 발췌·번역하는 ‘고전의 세계’는 지금까지 50여 종, 한국문학을 포함한 세계문학의 주요 작품을 엮는 ‘세계문학’은 30여 종이 나왔다. 김광식 주간은 “논쟁의 마당으로서의 성격이 어느 정도 확립된 만큼 앞으로 좀더 수준 높은 논리로 승부하는 지성의 공간으로 ‘우리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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