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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근대문학의 종언’에 한국문단은 답하라

등록 2007-05-25 19:31수정 2007-05-25 19:35

최재봉/문학전문기자
최재봉/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하나의 유령이 한국문단을 배회하고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유령이. 미디어, 출판자본, 문학 전공 교수, 편집자,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등등 문학을 둘러싼 모든 권력의 담지자들이 이 유령과 맞서기 위해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의 도입부를 비튼 이 구절은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 인문학부)가 영미문학연구회의 기관지 〈안과 밖〉 제22호(2007년 상반기호)에 쓴 글의 일부다. ‘추억과 집착-〈근대문학의 종언〉과 그 논의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단 이 글은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한국 문단의 반응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면서 한국 문학의 반성과 갱신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시급한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근대문학의 ‘끝장’을 선언한 가라타니의 주장에 대해 국내의 주류 문단은 시큰둥하지 않으면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권 교수는 그러한 태도가 솔직하지 못하거나 오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본다. 그는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상실한 제도적인 차원의 관성적인 문학”에 대한 가라타니의 거시적 비판은 받아들이되,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현실과 체제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시도하는 소수파 문인들과 적극적인 비평적 대화를 수행”해야 할 필요를 역설한다.

〈근대문학의 종언〉의 메아리는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 여름호에서도 들을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이라는 이 잡지의 기획에는 세 사람의 평론가가 글을 보탰다. 이 가운데서도 문제의 책 〈근대문학의 종언〉과 가라타니의 또 다른 저서 〈언어와 비극〉을 번역한 조영일씨의 글이 흥미롭다. ‘비평의 노년-가라타니 고진과 백낙청’이라는 제목의 이 장문의 글은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 테제가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을 한국 문단과의 교류 속에서 살펴보고, 비슷한 연배의 평론가인 가라타니와 백낙청의 만남과 헤어짐의 역사를 통해 그 테제가 한국의 주류 문단에 던지는 메시지를 헤아린다.

가라타니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한·일 양국을 오가며 진행된 ‘한일작가회의’에 꾸준히 참석했다. 조씨에 따르면 가라타니는 이미 1993년의 제2차 회의에서 발표한 ‘한국과 일본의 문학’이라는 글에서 ‘문학의 종언’ 테제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문지’(출판사 문학과지성사) 계열 문인들로 이루어진 한국쪽 파트너들은 그의 주장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문지의 ‘문학주의’에 실망한 가라타니는 이후 백낙청 교수로 대표되는 ‘창비’ 쪽과 접촉해 보지만, 결국 마찬가지의 실망을 경험하고 한-일 문학교류에서 손을 떼고 만다. 결론적으로 조씨는 백 교수가 최근 저서 〈한국문학의 보람〉(2006)에서 강조한 ‘한국문학의 보람’이란 곧 가라타니가 경고한 ‘문학의 종언’의 역설적인 증거일 뿐이라고 본다. “완전히 ‘문학화’된(즉 비평이 종언을 고한) 한국문학에서 문학의 적은 영화나 게임이 아니라 문학 자신”이라고 그는 일갈한다. ‘‘창비’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을 자처하는 그가 “‘창비’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역시 해체할 때가 된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 어조에서는 비장함과 아울러 씁쓸한 비애의 정조가 묻어난다.

동맹이냐 해체냐. 가라타니의 테제는 지금 한국 문단을 향해 엄중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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