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부드러운 손>김광규 지음/문학과지성사·6000원
정년퇴직 뒤 느끼는 회한·아쉬움 가득
‘세월이 가는 소리’에 두려움 느끼지만
이내 “이젠 주행차선을 내려가야지요” 순응
‘세월이 가는 소리’에 두려움 느끼지만
이내 “이젠 주행차선을 내려가야지요” 순응
<시간의 부드러운 손>
김광규 지음/문학과지성사·6000원 김광규(66·사진)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을 냈다. 지난 시집 〈처음 만나던 때〉(2003)와 이번 시집 사이에 그는 재직하고 있던 한양대에서 정년퇴직했다. 시집에는 정년에 즈음해서 느끼는 회한과 아쉬움이 짙게 배어난다. 표제작부터가 정년 또는 나이듦을 읊은 노래다. “뒤에서 슬며시 등을 떠미는 듯/ 보이지 않는 손/ 벽오동 잎보다 훨씬/ 커다란 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부드러운 손”(〈효자손〉 부분) 고교 교사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36년에 이르는 교직생활을 마감한 뒤 자연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인은 인왕산 기슭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안산 자락의 지금 집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 시인의 거처는 출세간의 깊은 산중도 아니고 홍진 날리는 저자도 아니다. 인간 세상과 자연계가 만나는 접점에서 시인은 양쪽의 소리를 아울러 듣는다. “행인들 지껄이는 소리에 섞여/ 골목길에서 개 짖는 소리/ 옆집 아줌마가 퍼부어대는 악다구니/ 깊어가는 가을밤 귀뚜라미 노래/ 오동나무 잎 떨어지는 소리/ 참으로 오랜만에 이웃과/ 동네의 소식 들려왔다”(〈잠깐 동안의 정전〉 부분) 그러나 시인이 무엇보다 날카롭게 새겨 듣는 소리는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다. 그 소리는 시인의 몸 안과 그가 사는 집 밖에서 두루 들려온다. 〈몸의 소리〉라는 시에서 그는 나이 들면서 “정신이 멀어져가는 자리에/ 몸뚱이 혼자 주저앉아 조금씩/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시집의 맨 앞에 놓인 〈춘추(春秋)〉라는 시는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와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사이에서 세 계절을 보내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시의 제목인 ‘춘추’란 물론 봄과 가을을 뜻하기도 하지만, ‘나이’와 함께 사전에 등재된 이 말의 세 번째 뜻인 ‘세월’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테다. 그러니까 시인은 자신의 몸 안과 밖을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자신을 버려둔 채 내달리는 세월의 질주 앞에서 시인은 어쩔 수 없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토로한다. 어린 시절 요긴한 먹을거리였다가 지금은 “김장 쓰레기로 버려지는/ 배추꼬랑이 신세”(〈배추꼬랑이〉)가 된 자신의 세대를 측은하게 응시하는가 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까마득하게 떨어져 나가는 두려움이/ 날카로운 비명으로 울리는 듯”(〈소리〉)한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흠칫 몸을 떨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인은 이내 자신을 추스른다. 한갓 화분 속 식물이 보여주는 소멸과 신생의 드라마에서 경이와 환희를 맛보기도 하고(〈이대목의 탄생〉), 땅거미 내리는 마당 한구석에 앉아 자신이 “한 점 검은 물체로”(〈땅거미 내릴 무렵〉) 멀어져 가는 과정을 연습해 보기도 한다. 더 어둡기 전에 시간의 고속도로에서 내려서야 한다는 것을 순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제는 주행차선을/ 양보하고 천천히 갓길로/ 들어섰다가 인터체인지 진출로 따라/ 내려가야지요 어둡기 전에”(〈어둡기 전에〉 부분)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광규 지음/문학과지성사·6000원 김광규(66·사진)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을 냈다. 지난 시집 〈처음 만나던 때〉(2003)와 이번 시집 사이에 그는 재직하고 있던 한양대에서 정년퇴직했다. 시집에는 정년에 즈음해서 느끼는 회한과 아쉬움이 짙게 배어난다. 표제작부터가 정년 또는 나이듦을 읊은 노래다. “뒤에서 슬며시 등을 떠미는 듯/ 보이지 않는 손/ 벽오동 잎보다 훨씬/ 커다란 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부드러운 손”(〈효자손〉 부분) 고교 교사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36년에 이르는 교직생활을 마감한 뒤 자연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인은 인왕산 기슭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안산 자락의 지금 집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 시인의 거처는 출세간의 깊은 산중도 아니고 홍진 날리는 저자도 아니다. 인간 세상과 자연계가 만나는 접점에서 시인은 양쪽의 소리를 아울러 듣는다. “행인들 지껄이는 소리에 섞여/ 골목길에서 개 짖는 소리/ 옆집 아줌마가 퍼부어대는 악다구니/ 깊어가는 가을밤 귀뚜라미 노래/ 오동나무 잎 떨어지는 소리/ 참으로 오랜만에 이웃과/ 동네의 소식 들려왔다”(〈잠깐 동안의 정전〉 부분) 그러나 시인이 무엇보다 날카롭게 새겨 듣는 소리는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다. 그 소리는 시인의 몸 안과 그가 사는 집 밖에서 두루 들려온다. 〈몸의 소리〉라는 시에서 그는 나이 들면서 “정신이 멀어져가는 자리에/ 몸뚱이 혼자 주저앉아 조금씩/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시집의 맨 앞에 놓인 〈춘추(春秋)〉라는 시는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와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사이에서 세 계절을 보내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시의 제목인 ‘춘추’란 물론 봄과 가을을 뜻하기도 하지만, ‘나이’와 함께 사전에 등재된 이 말의 세 번째 뜻인 ‘세월’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테다. 그러니까 시인은 자신의 몸 안과 밖을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김광규 시인
“이제는 주행차선을/ 양보하고 천천히 갓길로/ 들어섰다가 인터체인지 진출로 따라/ 내려가야지요 어둡기 전에”(〈어둡기 전에〉 부분)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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