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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양적 이야기’가 세계 휘어잡을 무기

등록 2007-06-01 19:47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나는 요즘 우리 출판에서 나타나는 스토리텔링의 10가지 유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책의 가능성을 키워나가기 위한 최고의 무기가 ‘이야기성’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On-AIR〉와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이상 예담 펴냄) 등 두 권의 에세이를 내놓은 김아타씨의 사진이 서양에서 큰 반응을 얻은 것은 사진 한 장 안에 담긴, 장편소설 한 권이나 영화 한 편 이상의 강한 임팩트를 던져주는 무궁무진한 이야기성 때문이다.

한국 소설의 침체 속에서 때 아닌 신드롬 현상을 몰고 온 김훈씨의 〈남한산성〉(학고재 펴냄)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인기는 굴곡 많은 현대사를 겪은 덕에 역사 추리를 즐기는 한국인의 심성에 맞아떨어진 것도 한몫했겠지만, 이념적 지형과 상관없이 독자 누구나 자기 현실에 맞게 해석이 가능한 다의성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나 희망 없는 정치, 민중의 피폐해진 삶과 연결할 수도 있지만 일상의 굴욕을 참고 견뎌야 하는 직장인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소시민적 삶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얼마 전 나의 ‘스토리텔링론’을 들은 한 외국문학 전공 학자는 세계적인 문예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이 20세기 말에 “머지않아 동양의 이야기가 주목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21세기 들어 〈해리 포터〉나 〈나니아 연대기〉 같은 서양의 이야기에 버금가면서 세계의 보편적 정서에도 부합하는 동양 이야기의 원천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서유기〉가 아닐까. 〈서유기〉는 동아시아에서 수없이 변주되어 왔다. 중국에서는 장지종 감독이 올해 말 50편의 텔레비전 시리즈 촬영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서유기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일본 〈후지 텔레비전〉에서 제작한 〈서유기〉는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에서 거의 동시에 방영되기도 했다. 동양의 이런 반응에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서유기〉를 영화화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동양 최고의 판타지인 〈서유기〉의 네 주인공인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 등은 각기 판이한 성격을 지녔지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천축에서 불경을 구해오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한다. 각기 다른 날 태어났지만 한날 한시에 죽자는 〈삼국지〉 주인공들의 맹세는 개인주의적인 서양인의 정서와 잘 맞지 않는 반면, 〈서유기〉의 캐릭터들은 미국산 자기계발서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우리는 〈서유기〉처럼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동양의 이야기를 블록버스터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 때에야 진정 문화의 중심을 동양으로 옮겨올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1권이 출간된 〈크로니클스〉(김기정 글, 홍성군 그림, 거북이북스 펴냄)는 동양의 세계관이 녹아든 연대기이고자 하는 변형 〈서유기〉다. 700만부가 팔린 〈마법 천자문〉이 한국적 스토리만화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학습성’을 무기로 대박을 터뜨렸지만 한국이라는 국지성을 뛰어넘기에는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크로니클스〉는 학습성을 배제하고 이야기 그 자체가 지닌 재미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만 있다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면서 세계를 한번 크게 흔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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