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민주항쟁 20주년 기념 학술대토론회가 열린 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연구자들이 '정치와 제도' 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경호기자 jijaeW@hani.co.kr
‘6월항쟁 20주년 토론회’ 민중운동의 과제 논쟁
사회적 신뢰위기 부른 건 민중과의 괴리 탓 진단 “신자유주의 대안을 제시해야” “복지국가 등과 같은 구체적 정책을 내놓아야” 4일부터 5일까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6월항쟁 20주년 학술대토론회’에서는 위기에 처한 민중운동의 한계와 과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민중운동의 향후 과제 등 여러 문제에서 상이한 인식차를 드러냈다. 4일 ‘한국 민중운동의 전개와 평가’ 세션에서 발표자로 나선 홍석만 진보전략회의(준) 운영위원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민중운동 진영의 대응은 실망스런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특히 경제위기 상황의 노동자 운동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하청과 원청, 국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등 분열 정책을 연대 정신으로 돌파하지 못해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노동정치가 진보정당의 정치로 수렴되면서 합법공간이 확대되었지만, 연대를 통한 사회변화를 촉구하기보다는 실리 위주의 대응으로 제한되면서 ‘신자유주의 성향의’ 여당과의 ‘은근한 타협’이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회양극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며 “민중운동은 신자유주의의 적극적인 대안을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하는 양극화 해법은 개발 위주가 아니라 남미에서 이뤄지는 재국유화 정책 등과 같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권력’과의 연대이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자유주의 대 민중운동 진영으로 구도를 단순화해서는 안된다”며 “전 세계 시장이 통합되는 가운데, 어디까지 수용하고, 거부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반박했다. 또다른 발표자인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민중운동이 추상적 목표를 제시하는 데서 벗어나 ‘복지국가’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민중운동이 “개별적 ‘조직의 위기’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위기’를 맞은” 까닭으로 민중과 민중운동의 괴리를 들었다.
“‘해방운동’을 이끄는 이상 속의 민중상과 달리, 현실의 민중 다수가 민중 문제에 관심이 없는 등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존재이다. 생활인이 안고 있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민중운동이 이뤄져야 한다.” 그는 민중운동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사회적 공익보다 집단내 실리주의에 빠진 문제 △민중운동 내 인맥으로 얽힌 ‘사이비 정파’의 문제 등을 꼽았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5일 ‘민주화의 주체와 민주주의 길’ 세션 발표문에서 민중운동의 위기를 지적하면서도, 지난 10년 동안 일정한 성과를 낸 산별노조운동과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2006년 금속노조와 공공노조의 산별 조직 전환 성공으로 연대 활동이 비정규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로 확장되었으며, 노사정위의 ‘합의주의’ 노동정치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조직적 자원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한편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관치경제를 없앤다는 명분 아래 재벌과 다국적기업이 민주주의적 통제에서 멀어지고 있다”면서 “한국경제에서 재벌은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자인 만큼 사회발전을 목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이들을 규제하는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진보 위기에 학자들도 책임” 교수 된 뒤 기성학계 풍토 답습
새로운 변화 이끌어내지 못해 “6월 항쟁 이후 진보적 지식생산이 약화된 데는 외부 환경의 변화 못지 않게 내부의 탓도 크다.” 김원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학술대토론회’ 둘째날 ‘1987년 이후 학문·사상 지형의 변화:지식과 권력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세션 발표문에서, ‘진보적 학술 진영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학계를 변화시킨 요인으로 김영상 정부 시절인 1995년 5월 도입된 ‘교육개혁 방안’과, ‘신지식인’ 개념을 창출시킨 김대중 정부의 지식 정책 변화를 들었다. 이로 인한 대학 변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대학내 구조조정, 경영 마인드를 가진 최고경영자형 총장의 도입, 대학 교원에 대해 연구실적 이외에 학회활동, 사회봉사, 대학발전기금 모금실적, 외부연구비 수주액, 신입생 모집, 취업알선 실적 등 일거수 일투족이 점수로 환산됐다. 하지만 문제는 진보적 학술 진영 내부에도 있었다. 그에 따르면, 진보적 학자들이 대거 제도권 학계로 진입했으나 이들은 기성 학계의 풍토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실제 진보적 학술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의 경우 2007년 현재 박사학위 취득 회원 155명 가운데 146명(94%), 산업사회학회는 박사학위 보유 회원 127명 가운데 84명(66%)이 교수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운동을 주도하던 학문세대 다수가 대학으로 진입했으나 비판적 사회과학 과목의 제도화 이외에 뚜렷한 대학 사회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중심 학계 풍토를 여전히 추종하고 있으며 신진 지식담론 생산자에 대한 배려와 지원도 발견하기 힘들다. 그는 특히 진보적 학술 단체의 학회나 심포지엄에서도 제도화나 학문·지식 담론의 폐쇄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질타했다. 상당수 학회가 발언을 자제하는 형식적인 토론에 그치는 등 ‘동창회’ ‘동문회’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학회는 커뮤니티이며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과 정보 등을 교환하는 장의 구실을 하지만, 현재는 ‘주객’이 전도된 채 커뮤니티의 껍질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 외부 연구공간인 ‘수유+너머’와 ‘자율평론’을 대안적 지식공동체의 가능성으로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이들 공간은 △제도권-지배적 질서로부터 자율적인 새로운 조직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한국 사회의 ‘하위 주체’들에 대한 이론화와 공감을 형성하는 교육적 효과 △지식권력의 수평화를 위한 가능성 모색 △지식담론생산자들 사이의 새로운 형태의 연대 모색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외국 학자들이 평가한 한국 민주운동 한국의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외국인 한국통 학자들의 시각은 어떨까. “민주혁명을 이뤄냈다”는 찬사에서부터 “여전히 취약하다”는 경계의 목소리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홀거 하이데 독일 브레멘대 명예교수
에드워드 베이커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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