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사회>, <막다른 길>, <지식인들의 망명>
미국 사학자 휴스의 3부작 재출간
1890~1960년 사상 흐름 분석해
프로이트·베버·크로체를 최고지성 꼽아
1890~1960년 사상 흐름 분석해
프로이트·베버·크로체를 최고지성 꼽아
<의식과 사회>, <막다른 길>, <지식인들의 망명>
스튜어트 휴스 지음·황문수 김병익 김창희 옮김/개마고원 각 권 2만~2만5000원 20세기 사상의 나무를 그린다면 가장 굵직한 가지는 무엇일까. 1960년대 프랑스 철학계는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세 사람을 20세기 사유의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폴 리쾨르는 이 세 사람을 가리켜 ‘의심의 세 대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가차없는 의심의 태도로 근대적 인간관을 뿌리까지 파고들어가 뒤엎음으로써 사유의 전복자가 됐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래 이 프랑스적 규정은 거의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만큼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어도, 이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20세기 사상의 흐름을 살핀 사람도 여럿 있었다. 미국의 지성사학자 스튜어트 휴스(1916~1999)도 다른 시선으로 20세기 유럽 사상사의 흐름을 통찰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 저작은 1950년대 중반부터 20년에 걸쳐 쓴 〈의식과 사회〉 〈막다른 길〉 〈지식인들의 망명〉 3부작이다. 1980년대 초에 한국어로 번역된 바 있는 이 책들이 같은 번역자들의 재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이 세 권 가운데 특히 첫쨋권 〈의식과 사회〉는 지은이 휴스를 지성사의 대가 반열에 올려 놓은 작품이다. 시기상으로 보면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벗어난 지 10여년 뒤,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결정적 사건인 68혁명이 일어나기 10여년 전에 쓰인 책이다. 따라서 68혁명이 낳은 탈근대주의 사상의 영향은 나타나지 않는 반면에, 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한 20세기 전반기 역사에 대한 참혹한 기억은 생생하다.
〈의식과 사회〉에서 지은이가 분석하는 시기는 1890~1930년이다. 이른바 세기말과 세기초로 이야기되는 이 시기는 20세기를 준비한 사상이 만들어져 1929년 대공황과 1933년 독일 나치 체제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시기다. 지은이는 이 시기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사상가·지식인들의 사상 형성과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출생 시기로 보면, 1856~1877년에 걸쳐 있고 특히 1860년대 후반 출생자들이 중심이다. 이들이 사유의 어떤 공통분모를 지니고 한 세대를 풍미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여기서 최고의 지성인으로 꼽는 세 사람이 오스트리아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독일인 막스 베버(1864~1920), 이탈리아인 베네데토 크로체(1866~1952)다. 이들의 사상이 20세기 전반기 지성사 지도의 큰 윤곽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다.
책의 도입부에서 지은이는 자신의 관점을 비교적 명확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리 알려주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지적인 교양은 유럽적 전통에서 물려받았으며, 특히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의 사상 안에서 훈련받았다고 그는 자신을 설명한다. 특히 기본 노선과 관점은 18세기 계몽주의를 따르고 있으며, 그 합리주의 사고방식으로 사태를 균형감 있게 보려 한다고 고백한다.
이런 관점 위에 서서 그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지성사 흐름이 독특한 역설을 품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 시대의 유행이었던 반지성주의 또는 비합리주의에 격렬히 반발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고무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 시기 가장 위대한 지성으로 꼽는 프로이트가 그런 역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무의식이라는 비합리적인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해 보려 했던 프로이트는 그 놀라운 발견으로 오히려 비합리적인 것의 활보에 문을 열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베버의 경우는 그 면도날 같은 위태로운 길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했다고 지은이는 평가한다. 이를테면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사회과학적 개념어로 만든 베버는 그 자신이 카리스마적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이 비합리적 힘의 ‘악마적 측면’을 불신하고 멀리했다. “그는 자신의 사고에 잠재해 있는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지적 지도자의 역할을 거부했다.” 이렇게 서술할 때 지은이는 베버 사후 권력자로 등장해 유럽을 집어삼킬 히틀러라는 카리스마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첫쨋권을 펴낸 뒤 10년 뒤 쓴 후속작 〈막다른 길〉은 1930년부터 1960년까지 프랑스 사회사상을 살피면서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등장에 특히 주목한다. 셋쨋권 〈지식인들의 망명〉은 앞 책과 같은 시기를 다루지만, 히틀러의 집권과 세계대전으로 망명을 택했던 유럽 지식인들의 지리적·사상적 이동을 추적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스튜어트 휴스 지음·황문수 김병익 김창희 옮김/개마고원 각 권 2만~2만5000원 20세기 사상의 나무를 그린다면 가장 굵직한 가지는 무엇일까. 1960년대 프랑스 철학계는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세 사람을 20세기 사유의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폴 리쾨르는 이 세 사람을 가리켜 ‘의심의 세 대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가차없는 의심의 태도로 근대적 인간관을 뿌리까지 파고들어가 뒤엎음으로써 사유의 전복자가 됐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래 이 프랑스적 규정은 거의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만큼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어도, 이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20세기 사상의 흐름을 살핀 사람도 여럿 있었다. 미국의 지성사학자 스튜어트 휴스(1916~1999)도 다른 시선으로 20세기 유럽 사상사의 흐름을 통찰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 저작은 1950년대 중반부터 20년에 걸쳐 쓴 〈의식과 사회〉 〈막다른 길〉 〈지식인들의 망명〉 3부작이다. 1980년대 초에 한국어로 번역된 바 있는 이 책들이 같은 번역자들의 재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이 세 권 가운데 특히 첫쨋권 〈의식과 사회〉는 지은이 휴스를 지성사의 대가 반열에 올려 놓은 작품이다. 시기상으로 보면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벗어난 지 10여년 뒤,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결정적 사건인 68혁명이 일어나기 10여년 전에 쓰인 책이다. 따라서 68혁명이 낳은 탈근대주의 사상의 영향은 나타나지 않는 반면에, 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한 20세기 전반기 역사에 대한 참혹한 기억은 생생하다.
20세기 유럽 지성사의 지도를 그리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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