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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발랄 ‘중딩’들, 고집불통 학교와 한판

등록 2007-06-08 19:40수정 2007-06-08 20:04

<우리들의 스캔들>
<우리들의 스캔들>
반카페에서 시작된 학교내 소동 통해
당당하게 성장해가는 아이들 그려
작가 이현, 창비청소년문학 첫주자
<우리들의 스캔들> 이현 지음/창비·8500원

“보라야. 나 너희 학교 교생으로 나왔어. 그것도 2학년 5반!”

“나 아는 척할 생각 하지마. 학교에선 우린 그냥 남남이야. 공과 사는 구별하고 살자고. 응?”

첫 장면, 주인공과 같은 집에 함께 사는 이모가 주고받는 휴대폰 문자 대화다. ‘나’는 “이보라의 학교생활백서 1조! 튀지 않는다, 밟히지도 않는다! 전에 말했지! 중딩 생활이 만만한 게 아니야. 좀 이해해주라, 응?” 하며 다시 문자를 날리지만, 답장 없는 ‘이모’의 등장은 모범생 보라의 일상은 물론이고 학교 전체를 뒤흔들 ‘스캔들’의 시작을 예고한다.

이모 진숙경,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30살의 ‘비혼모’이자 홍대 앞 클럽에서 무명가수로 활동하며 뒤늦게 사범대에 다시 진학해 교사가 되는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있다. 솔직하고 불의를 못 참는 성격까지 지녔다.

그런 ‘남다른 경력을 지닌 이모’가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잡은 신설학교. 하지만 ‘새롭다’는 것은 단지 이름과 시설뿐. 군내 나는 교칙들과 꽉 막힌 선생님들, 더불어 칙칙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교복까지. 그야말로 고리타분의 결정판”인 새빛중학교에 교생실습을 나왔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스캔들의 진원지는 반원 38명이 모두 익명으로 활동하는 인터넷 반 카페 ‘http://cafe.daum.net/0205secretroom(비밀의 방)’. ‘L’이 이모와 아이의 사진을 올리면서 소문은 퍼지고 결국 이모는 교실에도 못 들어오게 하는 학교와 담임선생에 맞서 ‘1인 시위’를 하기에 이른다.

발랄 ‘중딩’들, 고집불통 학교와 한판!
발랄 ‘중딩’들, 고집불통 학교와 한판!
하지만 스캔들의 진짜 주인공은 ‘이모’가 아니다. 때마침 댄스동아리의 ‘짱’이 학교 이사장의 외손자인 ‘날라리’ 학생을 때리고 도망가는 사건이 터지고 학교 당국은 담임을 앞세워 동아리 회원인 보라의 친구를 추궁하고 반 아이들한테도 ‘고자질’을 강요한다. 급기야 그 친구는 가출을 해 정학 처분을 받고 카페에는 그 부당함을 고발하는 ‘레인보우’의 글과 담임이 학생을 폭행하는 장면을 찍은 ‘프로도’의 휴대폰 동영상이 뜬다. 이모의 사진을 삭제하려고 시작한 보라의 ‘닉네임 추리전’은 이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반 아이들은 ‘학교’라는 권력에 맞서기 시작한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익명의 아이디를 밝혀내는 미스터리 기법, 십대들만의 인터넷 언어와 정서 등등이 군더더기 없이 어우러진 작가 이현의 첫 장편소설은 무엇보다 거침없이 재미있게 읽힌다.

“학교는 참, 고집불통이다. 겉으로야 전신 성형에 버금가는 변신을 시도하는 모양이지만, 그 속은 어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은지. 바야흐로 서기 2000년대를 살아가는 중고딩들의 하소연이 어쩌면 이삼십 년 전과 그렇게도 똑같은지.”

이런 문제의식에서 ‘학교폭력’ ‘비혼모’ ‘동영상 공개’ 같은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도식적인 비판이나 좌절 같은 어두운 면보다는 당당하게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밝은 면을 포착한 작가의 시선이 건강하다. 무엇보다 작가의 성장체험이나 ‘그때 그 시절’ 회고담을 들려주던 기존 청소년문학의 한계를 벗어나,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주변 십대들이 직접 끌어가는 이야기 방식이 공감을 더한다.

<우리들의 스캔들> 저자 이현
<우리들의 스캔들> 저자 이현
등단 4년째 첫 장편소설로 ‘창비청소년문학 1권’의 자리를 부여받은 작가의 이력에 새삼 눈길이 간다. 2004년 첫 단편 〈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06년엔 동화집 〈짜장면 불어요!〉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 당선됐다.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는 “‘지금 여기’의 청소년과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새로운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충실하게 담아 즐겁고도 의미 있는 책읽기가 될 것”을 다짐하며, 성석제·공선옥·듀나 등 우리 시대 대표 작가들의 장·단편 소설과 루이스 새커·벌리 도허티 같은 외국 작가들의 출간 목록을 예고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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