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윤성희 지음.창비·9800원
이수문학상 수상작 ‘하다 만 말’ 등 11개 단편
가족의 해체와 유사 가족의 출현 천착 눈길
고통 속 웃음 잃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애정
가족의 해체와 유사 가족의 출현 천착 눈길
고통 속 웃음 잃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애정
<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9800원
윤성희(34)씨가 세 번째 소설집 〈감기〉를 펴냈다. 올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하다 만 말〉을 비롯해 원고지 80장 정도 분량의 단편 11편이 묶였다.
수상작 〈하다 만 말〉은 파산지경에 이르러 엉뚱하게도 맛집 기행을 떠나는 일가족을 등장시키는데, 화자인 소녀 ‘나’가 사실은 죽은 이의 영혼, 그러니까 유령이라는 사실이 소설 말미에 가서야 드러난다는 데에 묘미가 있다.
딱히 수상작이라서가 아니라, 소설집 전체의 제목을 ‘하다 만 말’로 했어도 좋았겠다 싶다. 작가는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사연과 이야기에 빠져들어가 한창 흥미를 느낄 만한 순간에 문득 소설을 끝맺는다. 〈등 뒤에〉라는 단편은 커브길에서 낡은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공중으로 날아오른 젊은 사내를 등장시키면서 시작되지만, 정작 소설 속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것은 그를 구완한 트럭 기사 출신 늙은 사내의 사연이다. 소설 말미에서 늙은 사내는 죽어서 땅에 묻히는데, 그를 묻고 난 주인공(?)-화자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75쪽)
〈등 뒤에〉에서 ‘나’가 못 다 한 이야기를 같은 소설집 속의 다른 작품들에서 듣는 듯한 느낌은 기묘하다. 소설집 〈감기〉의 수록작들은 겉보기에 서로 관련이 없는 인물과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같은 연작의 부분들인 것처럼 읽힌다. 〈등 뒤에〉와 〈리모컨〉 〈이어달리기〉 같은 서로 다른 작품들에 ‘약속다방’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트럭 운전수들도 몇 군데에 나온다. 꼼꼼한 독자라면 소설들 상호간의 교차 참조로써 일종의 ‘감기 공화국’ 주민대장을 작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더 근본적으로, 〈감기〉의 수록작들은 가족의 해체와 ‘유사 가족’의 출현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많은 소설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자식이 집을 나가며, 그렇게 와해된 가족은 핏줄 바깥에서 찾은 ‘가짜 가족’이 대신하는 양상을 보인다.
〈리모컨〉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이 제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129쪽)라는 전화를 받고 위암 말기라는 그 전화의 발신자를 진짜 언니처럼 보살핀다. 〈이어달리기〉의 어머니는 어려서 헤어진 어머니로 추정되는 노인을 만났다는 이야기 끝에 “(그 분이 진짜 어머니였는지)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다”(184쪽)고 말한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나란히 살아남은 뒤 형제처럼 살아가는 〈부분들〉의 세 남자, 비슷한 또래에 별자리가 같다는 이유로 친자매나 친구처럼 어울리는 〈안녕! 물고기자리〉의 여성들 역시 일종의 유사 가족을 이룬다.
윤성희씨의 소설들은 동화적 발상과 유머러스한 장면 처리로써 고통 속에서도 낙관적 태도를 잃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그것은 〈하다 만 말〉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행이야”(51쪽)의 태도일 것이고, 〈부분들〉에 따르자면 “걱정하지 마!”(255쪽)의 세계관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분들〉의 막내는 “생각해 보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거예요”(255쪽)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이 세계란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 정도로 위태로운 곳이라는 불안 내지는 불만과 함께, 그런 곳에서 살아남았으니 그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하는 감탄과 감사의 뜻 역시 포함하는 것처럼 들린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성희씨. 사진 신소영 기자
윤성희씨의 소설들은 동화적 발상과 유머러스한 장면 처리로써 고통 속에서도 낙관적 태도를 잃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그것은 〈하다 만 말〉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행이야”(51쪽)의 태도일 것이고, 〈부분들〉에 따르자면 “걱정하지 마!”(255쪽)의 세계관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분들〉의 막내는 “생각해 보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거예요”(255쪽)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이 세계란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 정도로 위태로운 곳이라는 불안 내지는 불만과 함께, 그런 곳에서 살아남았으니 그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하는 감탄과 감사의 뜻 역시 포함하는 것처럼 들린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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