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풍경>
사회과학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에세이
문학 그림 철학 신화 등 44꼭지로 변주
“보통사람 격려하고 희망 전하고 싶었다”
문학 그림 철학 신화 등 44꼭지로 변주
“보통사람 격려하고 희망 전하고 싶었다”
인터뷰 / ‘자유인의 풍경’ 펴낸 김민웅 교수
신자유주의나 미국 패권주의, 그들에 공명하며 분단체제 모순과 양극화를 심화시켜가는 나라 안팎 세력들에 대한 그의 삼엄한 전투적 응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인의 풍경〉(한길사)은 전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실은 바로 이게 나다. 이게 바로 전방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이것이 나의 기초이며, 이런 토대 위에서 내가 자라났다.” ‘김민웅의 인문학 에세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첫번째 얘기는 ‘커피와 지도’다.
커피 한 잔의 향기는 오래 전 아프리카 밀림에서 출발해 이슬람세계로, 그리고 자바와 에티오피아, 온두라스로 이어지는 사념의 여행으로 초대한다. 그것은 다시 종로1가 ‘제비다방’과 대학로의 ‘학림다방’, 그리고 다시 커피 식민주의와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로 넘어가고, 제국주의 잔영인 직선으로 잇대어진 아프리카 국경들, 그와 다를 바 없는 한반도의 분단을 지나 다시 지도로 간다.
만일 학교와 커피 마시는 곳이 아름답고 재미있게 그려진 새로운 지도가 만들어진다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지도, 국가의 경계선으로 나뉘지 않은 지도는 인류 공동체가 함께 누리고 지켜야 할 그런 지구의 생명을 깨닫게 할 것이고 거기엔 “지배와 욕망의 유혹은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지도란 정해진 규칙과 원리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는 세상의 가치만큼 다르게 그릴 수 있는 ‘백지의 무한 공간’이라는 자유”, “세상이 본래 지니고 있는 생명의 힘”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몰랐거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제대로 모르는 것, ‘어, 이런 게 있었어?’ 하고 놀라게 만드는 세상의 무수한 풍경들을 따라가면서 삶의 모든 영역에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는 일은 스스로 창조해가는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고 자기 인생의 행복한 주역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유가 주는 선물이며, 인간과 역사의 내면을 깊이 응시하고 성찰하는 인문학은 그런 자유를 위한 풍성한 양식이다.” 요컨대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의 풍성한 인문학적 사유, “자기 실존을 걸고 고독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친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사육당하지도 유혹당하지도 않고 끝까지 자기 확신을 아름답게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넓고 깊게, 그리고 행복하게 만들 것이며 다수가 그렇게 될 때 세상은 바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도 이처럼 “자신의 몸과 머리로 사유하는 힘을 기르고 지식과 삶이 하나가 될 때” 극복될 수 있다.
김민웅 교수는 195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다섯살 때 귀국했다. 대학원 졸업 뒤 정치철학 강사를 하다 〈코리아타임스〉에 들어가 2년 반 정도 일한 뒤 1982년 미국에 건너갔다. “아직도 어릴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일본과 미국 생활이 야기한 정체성 고민은 그의 인문학적 사유의 출발점이었다. “정치학을 공부하러 갔는데, 사회과학연구자 중에 정작 미국을 공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공부하면서 지평을 넓혔고, 이 시대 미국을 제대로 보지 않고는 새로운 문명을 생각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을 토대로 감정적 주장이 아니라 실체적 정보를 통해 세계의 실상에 대해 발언하고 알렸다. 거기서 23년 동안 사회과학 연구자, 방송인, 기독교 목회자로 활동(17년)하다 2004년 돌아왔다. 〈교육방송〉(EBS)에서 ‘김민웅의 월드센터’를 2년 한 뒤 성공회대학에서 ‘세계체제론’을 가르치면서 〈프레시안〉 편집위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매일 오후 4~6시에 진행됐던 ‘월드센터’ 마지막 5분을 ‘인문학적 사유’에 할애했는데, 그때 써서 읽은 원고들이 〈자유인의 풍경〉의 모태가 됐다. 하지만 내용도 분량도 그때와는 크게 달라졌다. “완전히 새로 썼다.” 고교 때 문예반에 있으면서 시, 평론을 발표했고 그림, 노래 활동도 했다. 분위기가 확 달라진 이 책이 돌연변이가 아니라 ‘본색’의 변주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두 40꼭지의 글을 실은 이번 책엔 44개의 삽화가 들어 있는데 모두 지은이가 색연필과 펜, 붓으로 직접 그렸다. “고교 때의 시화전 이래 30년 만에 그린 셈인데, 그래도 되더라.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다시 쓰는 데 1년, 그림 그리기에 한 달 정도 걸렸다.
문학, 연극, 시, 영화, 그림, 철학, 신화 등을 종횡무진 누비는데, 풍성한 자료들을 맛깔나게 구사하는 내공이 보통 아니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왕의 남자〉, 이중섭, 몽테뉴, 루소, 루쉰, 이병주, 양주동의 고난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자유”와 휴머니즘을 찬양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오늘의 역사가 망각하거나 사각지대화하고 있는 지점에서 세상을 바꾸는 깃발을 들어올리는 자의 외침”을 듣고 우리가 과연 그들만큼 치열한지 곱씹으며, “그 혈관에 소수자, 억울한 희생자, 약자들의 절절한 간구가 흐르고 있는 이들은 모두 평화의 벗이자 결국 같은 길을 가는 이들”이라는 확신 속에 광범한 연대의 가능성을 재확인한다.
결국 사회과학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지 않다. “인문학적 사유와 질문을 사회과학의 단서로 삼아, 사회과학을 인문학적으로 풀어쓰는 것”, 그것이 이번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보통사람들이 쉽게 다가와 따뜻한 성찰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불어넣자는 것이었다.
“끝까지 충실하게 크는 나무는 느리게 자란다.” 성장에 안달하면서 성숙에는 관심없는 성장제일주의 사회는 그런 걸 모른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김민웅 교수
김민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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