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 <허블의 그림자> 제프 캐나이프 지음·심재관 옮김.지호·1만3000원
“북두칠성의 국자 부분에만 4백 개 이상의 은하가 들어 있습니다.” 첫 문장으로 사로잡는 책은 끝까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 책이 그렇다. 지구 대기권 밖에 설치된 망원경인 허블 망원경이 밝혀낸 우주의 모습을 다룬 이 책은 ‘이렇게 작은 영역에 그토록 많은 은하가 있다면 하늘 전체에는 얼마나 많은 은하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해 준 허블망원경에 단번에 매료되게 만든다.
지름 2.4m의 작은 망원경이지만, 허블 망원경은 우주로 쏘아올린 망원경이라서 하와이 마우나케아 꼭대기 바로 아래 있는 세계 최대 망원경 ‘켁’보다 수십억 배 더 선명한 우주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달의 그늘진 곳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1996년 허블망원경으로 관측한 먼 우주의 모습이 최초로 공개됐을 때 전세계 천문학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널리스트 제프 캐나이프는 허블망원경으로 우주를 탐구하는 천문학자들의 흥분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먼 우주의 모습은 사실 ‘시간적으로 먼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 빛을 ‘화석 빛’이라 부른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은하들은 과거의 존재가 유물로 남겨놓은 영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블망원경이 관찰하는 은하빛은 화석빛처럼 그저 오래된 빛이 아니라 심지어 ‘갓 태어난 어린 빛’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그것은 70억~80억 년 전 우주의 모습, 심지어 겨우 우주가 탄생한 지 8억년 만에 생성된 은하 모습도 관측해내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하느님의 최초의 창조물’에 가까운 은하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덕분에 천문학자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예전의 은하를 관찰하고 현재의 은하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게 됐다. 과연 그들은 비슷했을까? 답은 이렇다. 놀랍도록 비슷했지만, 다른 부분도 있었다. 대부분의 특징은 유사했지만 그 모양은 기괴했다.
만약 허블망원경으로 우주의 반대방향을 비추더라도 우리는 비슷한 영상을 관찰할 수 있을까? 곧 우주는 전체적으로 균질하며 방향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팽창하고 있을까? 관측 결과, 은하의 유형과 형태는 제각기 달랐지만, 그 수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균질하고 등방적이었던 것이다.
저명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자신의 책 〈성운의 왕국〉에서 ‘천문학의 역사는 멀리 후퇴하는 천문학의 역사이다’라고 썼다. 이 책의 제목인 ‘허블의 그림자’란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궁극의 경계를 말한다.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는 그 흐릿한 그림자는 우주 탄생과 그 진화의 비밀을 간직한 궁극의 지평이다. 허블 망원경이 찍은 은하의 모습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빛을 보여주고 있지만, 내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처럼 그 안에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저명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자신의 책 〈성운의 왕국〉에서 ‘천문학의 역사는 멀리 후퇴하는 천문학의 역사이다’라고 썼다. 이 책의 제목인 ‘허블의 그림자’란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궁극의 경계를 말한다.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는 그 흐릿한 그림자는 우주 탄생과 그 진화의 비밀을 간직한 궁극의 지평이다. 허블 망원경이 찍은 은하의 모습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빛을 보여주고 있지만, 내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처럼 그 안에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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