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때의 도도한 기생(일제시대 엽서)
조선말 기생 작품집 ‘소수록’
현대어 번역한 ‘나는 기생이다’
현대어 번역한 ‘나는 기생이다’
기생들이 스스로의 삶을 생생히 그려낸 조선말 기생문학 작품집인 〈소수록〉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해설과 주석을 붙인 단행본이 출간됐다.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최근 펴낸 〈나는 기생이다-소수록 읽기〉(문학동네 펴냄·1만5천원)는 19세기 중·후반 해주와 청주 기생 등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 〈소수록〉의 작품 14편 모두를 담고 있다. 기생집 주변의 남자가 1894년 기생 창작 작품을 모아 엮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수록〉은 본문이 총 125면인 한 권짜리 한글필사본이다. 장편 가사, 토론문, 시조, 편지글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이 실려 있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사의 기생 작품은 주로 상대 남성에 대한 감정을 드러낸 짧은 시편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기생의 개인적인 생활감정을 풍부히 담은 〈소수록〉은 기생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정 교수는 내다봤다. 이 책에는 〈소수록〉 이외에 서울대 규장각, 고려대 도서관 등이 소장한 또 다른 기생관련 글도 수록됐다.
작품집에는 기생의 신산한 삶과 욕망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해주 기생 명선은 〈소수록〉 1편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본다. “이십이 늦잖거든 십이 세에 성인(成人)하니/어디 당한 예절인지 짐승과 일반이라”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손님과 첫 잠자리를 치른 명선이 겪었을 ‘모멸’과 ‘분노’의 감정이 절절하다. “향 훔치는 너희 무리 뜻 맞는 이 전혀 없고 머리 아픈 꼴이로다/얻자는 것 무엇이며 보자는 것 더욱 괴(怪)타” 마음에 드는 남자는 단 한명도 없는데 남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은밀한 부분’만 보기를 원한다는 탄식이다.
“음전하고 진중하면 대가 세다 논란이요/새침하고 얌전하면 방자하다 돌리이고/조용 않고 어여쁘면 여우라 별명이요/능수능란 은근하면 흉측하다 별명이요/맵시있고 간드러지면 방정맞다 쓴 말이요” ‘별실자탄가’에서는 인간사 손가락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기생첩의 숙명이 도드라져 드러난다. 늙은 자기 몸을 바라보는 노기의 탄식은 누구라도 공감을 자아낸다. “버들같이 가는 허리 고목을 이웃하고 백옥같이 흰 얼굴은 유자껍질 일반이라. (중략) 보드랍고 곱던 젖은 빨아먹은 연감이요, 수정같이 맑던 살은 불에 글린 등걸이라”(소수록 7편)
‘외입장이’의 세계에도 나름의 격식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풍류를 좋아했던 이용기(1860년대초~1934년)가 엮은 〈악부〉를 보면 서울 기생집에서는 기생이 한 명이라고 해도 여러 패의 손님을 동시에 받았다. 다른 패 손님들이 한자리에 있을 때는 서로 “평안호”라고 간단히 인사한다. 할 말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좌중에 통할 말 있소”라고 입을 떼야 한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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