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통화개혁 시행과 관련된 경제동향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왼쪽) 새뮤얼 버거 주한 미국대사 일행이 군사정부의 내각 기획통제관실을 방문했다.(오른쪽) 군사정부의 초기 경제개발계획은 수출주도형 성격을 원하는 미국 쪽 요구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균형성장론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국은 원조감축과 환율문제 해결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수출주도형 체제를 선호했다. / 서울대 출판부 제공
박태균 교수, 1950~60년대 경제개발계획 분석
전통적 공개념과 미국·제3세계 영향이 주요인
‘수출주도형 씨뿌렸다’ 는 식민지 근대화론 반박
전통적 공개념과 미국·제3세계 영향이 주요인
‘수출주도형 씨뿌렸다’ 는 식민지 근대화론 반박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이 전근대적인 조선을 근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는 게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연구자들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고도성장을 이룬 데도 일제 강점기 성장이 결정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식민지였던 남한과 대만의 경제발전이 다른 식민지 국가에 비해 두드러진 점이나 박정희 등 경제발전 주도 세력이 일제 강점기에 교육받았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무게를 더해 준다.
이에 대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사)는 최근 펴낸 〈원형과 변용-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원〉(서울대 출판부 펴냄)에서 1950~60년대 한국 경제개발계획 분석을 통해 일제 식민지 정책이 한국 고도성장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된 경제개발계획의 입안과 추진에서 일제 강점기 영향은 우리 사회 안과 밖의 여러 요인 가운데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첫 요인으로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공개념’을 들었다. 미국과 이승만 전 대통령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이유로 국가주도 경제개발계획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1950년대 이승만 정권조차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할 만큼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은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있었다는 게 박 교수의 판단이다. 국유와 토지분배를 뼈대로 하는 ‘공개념’은 이미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제정책에도 명기되어 있다. 이 경제정책 초안자인 조소앙은 이를 두고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경제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며 “토지 국유는 한국인의 심리적, 관습적인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또 “공적인 개념이 활성화되었을 때 국가가 부흥기를 맞이했다”며 “해방 이후 새로 건설될 국가에 전통시대부터 계속된 국민들의 ‘심리적 관습적’인 가치관에 따라 공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3·1운동 이후 나타난 인민 주권주의에 기반한 공화주의, 일제 강점기 좌파 지식인들의 계획경제론도 영향을 끼쳤다”면서 이런 전통적인 공개념이야말로 경제개발계획을 이끈 주요 요인으로 부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과 법률 제도를 정비한 일제 강점기 영향 이외에 또 다른 요인은 1950년대 인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움직임이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되었던 인도와 이집트 등 영연방 국가들은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해 실시했다. 특히 경제적 자립 지향의 모델로서 인도가 주목을 받았다. 박 교수는 “1950년대 지식인·관료는 제3세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박정희 정권 초창기 경제정책을 주도한 박희범 전 문교부 차관은 인도 경제 전문가로 인도를 경제 개발의 모델로 삼았다”고 말했다. 경제개발계획의 실행을 가능하게 한 또 다른 주요 요인은 미국이다. 미국이 무상원조를 줄이고 더 나아가 유상차관으로 전환하면서 경제개발계획의 필요성을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케네디 행정부가 경제개발계획 없이는 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저개발국 정책을 바꾼 게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수출주도형 경제가 일제 때부터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1950년대와 60년대 초의 경제개발계획은 수출주도형이 아니라 균형성장론의 내용을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수출주도형 경제의 기원을 일제 식민지 정책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경제 성장에는) 미국과 제3세계의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이런 요인들이 일제의 식민지 정책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마무리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원형과 변용-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원〉(서울대 출판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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