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정이현(35)씨는 등단 6년차의 비교적 젊은 작가임에도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첫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3)가 평단의 호평을 얻은 데 이어 지난해 펴낸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가 독자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음으로써 그는 문학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었다. 정이현 소설의 트레이드마크는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내부자의 관점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등단작인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다소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시피 정이현 소설의 여성 주인공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허위적 욕망을 부정하거나 그에 저항하는 대신 그에 순응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영악하게 이용하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정이현씨의 두 번째 소설집인 〈오늘의 거짓말〉은 앞선 작품들의 기조를 이어받으면서도 좀더 넓고 깊어진 시선을 보여준다. 표제작을 비롯해 열 편의 단편이 묶인 책에서 작가는 겉보기에 평온하고 안정적인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균열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들춰 보여준다. 평범하고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이 지속되던 중 어느 날 문득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린 〈삼풍백화점〉의 백화점, 개를 누가 키울 것인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중 심각한 교통사고를 낸 채 뺑소니를 치는 〈타인의 고독〉의 이혼한 부부, 번듯하게 자란 대학생 아들이 미성년자인 소녀를 옆자리에 태운 채 음주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서 결국 동승자를 죽이게 되는 〈어금니〉의 어머니 등은 평온한 일상의 뒤편에 음험하게 도사린 균열과 위기의 실체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그 남자의 리허설〉과 〈비밀과외〉 같은 세태물, 그리고 〈어두워지기 전에〉와 〈익명의 당신에게〉처럼 추리적 터치가 돋보이는 작품들까지 포함해서 정씨의 소설 주인공들은 잠시 도드라진 균열의 흔적을 애써 봉합하고는 일상의 평온 뒤로 몸을 감춘다. 그러나 아들의 엄청난 죄과를 돈으로 무마한 뒤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94쪽)라고 말하는 〈어금니〉의 어머니에게서 보듯, 정씨의 새 소설 주인공들은 전작들에서보다는 체제에 대한 회의와 비판, 그리고 윤리적 각성 쪽으로 한결 다가간 모습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정이현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정이현(35)씨는 등단 6년차의 비교적 젊은 작가임에도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첫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3)가 평단의 호평을 얻은 데 이어 지난해 펴낸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가 독자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음으로써 그는 문학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었다. 정이현 소설의 트레이드마크는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내부자의 관점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등단작인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다소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시피 정이현 소설의 여성 주인공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허위적 욕망을 부정하거나 그에 저항하는 대신 그에 순응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영악하게 이용하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정이현씨의 두 번째 소설집인 〈오늘의 거짓말〉은 앞선 작품들의 기조를 이어받으면서도 좀더 넓고 깊어진 시선을 보여준다. 표제작을 비롯해 열 편의 단편이 묶인 책에서 작가는 겉보기에 평온하고 안정적인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균열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들춰 보여준다. 평범하고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이 지속되던 중 어느 날 문득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린 〈삼풍백화점〉의 백화점, 개를 누가 키울 것인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중 심각한 교통사고를 낸 채 뺑소니를 치는 〈타인의 고독〉의 이혼한 부부, 번듯하게 자란 대학생 아들이 미성년자인 소녀를 옆자리에 태운 채 음주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서 결국 동승자를 죽이게 되는 〈어금니〉의 어머니 등은 평온한 일상의 뒤편에 음험하게 도사린 균열과 위기의 실체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그 남자의 리허설〉과 〈비밀과외〉 같은 세태물, 그리고 〈어두워지기 전에〉와 〈익명의 당신에게〉처럼 추리적 터치가 돋보이는 작품들까지 포함해서 정씨의 소설 주인공들은 잠시 도드라진 균열의 흔적을 애써 봉합하고는 일상의 평온 뒤로 몸을 감춘다. 그러나 아들의 엄청난 죄과를 돈으로 무마한 뒤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94쪽)라고 말하는 〈어금니〉의 어머니에게서 보듯, 정씨의 새 소설 주인공들은 전작들에서보다는 체제에 대한 회의와 비판, 그리고 윤리적 각성 쪽으로 한결 다가간 모습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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