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교수
“여성의 눈으로 보면 철학이 달라진다”
제13차 세계여성철학자대회가 ‘다문화주의와 여성주의’를 주제로 걸고 내년 7월 서울에서 열린다. 1980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 대회가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기는 처음이다.
대회 태동 동기는 ‘정치적’이다. 대학교수직 경쟁에서 성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독일 여성 철학자들이 ‘우리끼리 한번 모여 네트워크를 구성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한국 조직위원장으로서 대회 개최계획을 최근 공식 발표했다. 그는 지난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여성철학회 이사회에서 영국을 제치고 대회를 유치했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인식방법론과 여성·예술 철학을 연구해오고 있다.
동·서양 철학 모두 ‘여성은 열등하다’ 인식 강해
대회서 문화차이 넘어 ‘열린 유대’ 토론할 것 -왜 여성철학자대회가 필요한가? =여성과 철학은 ‘둥근 사각형’과 같은 ‘형용모순’의 관계라는 편견이 플라톤 이후 굉장히 뿌리 깊다. 남성은 논리, 이성적이지만 여성은 감성적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철학적 수행에 있어 여자가 열등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전통이 남성에게 유리하게 형성되어 있어 여자는 전통을 향해 싸워야 한다. 동양철학에서도 소인과 여성은 같은 무리로 보았다. 음양사상에 입각한 남존여비의 기술을 읽게 되면 자기 인식에 있어 굉장한 분열을 초래한다. 자기 자신을 모독하는 텍스트를 읽게 되면 굉장한 소외감을 느낀다. 강한 여자는 이것을 견디고 일어 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것을 내면화하고 (남자들의 세계에) 끼워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여성철학’은 무엇인가?
=철학에서 말하는 보편적 인간은 남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행복한 삶을 관조적 삶으로 봤다. 이게 가능한 조건은 남성이다. 여성은 가사와 육아에 묶여 있다. 지금까지 철학적 전통에서 여성의 존재는 없었다. 보편적이고 중립적이란 것은 남성 중에서도 서양 백인 남성의 관점이다. 여성철학은 철학의 역사를 달리 보는 대안적 철학이다. 구체적인 인간 경험, 삶의 맥락으로부터 철저히 전제를 찾고, 관념을 끄집어내어 분석하는 철학을 지향한다.
-철학은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다룬다. 성을 기준으로 나누는 철학의 개념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 규정은 없다. 사회 문화적으로 규정될 뿐이다. 세상에 풀이 굉장히 많다. 인간의 관심 아래서 어떤 개념의 풀이 생긴다. 식물은 암수의 관점에서 안본다. 그냥 은행나무로 본다. 100여년 뒤 가족관계의 다양성이나 노동에 있어 성별분리가 무너지면 남녀라는 것이 이름없는 풀처럼 의미없는 범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남녀의 삶은 젠더(성)에 의해 보도록 길들어져 있다. 한국철학이나 일본철학처럼 상황성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인식론이나 미학, 윤리학은 성적 관점의 개입을 통한 연구가 활발하다. 형이상학이나 논리학은 이에 비하면 성적 관점의 개입이 덜 적합한 편이다. 과거 철학자들의 사유에 대해서도 기존 해석과 다른 여성주의적 해석이 이뤄지고 있다.
-내년 대회 주제가 ‘다문화주의와 여성주의’다?
=여성은 인종과 계급 나이 등에 따라 굉장히 다르게 나뉜다. 같은 종류의 이해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런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하나의 여성을 말할 수 있느냐를 놓고 토론할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각자의 고유문화가 존중되야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복잡한 문제를 일으킨다. 여성 억업적인 이슬람과 공자 문화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평등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러한 존중이 되어야 한다. 나는 ‘열린 유대(open solidarity)’를 강조한다. 한국인이면서 여성, 이화여대 출신, 어머니인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각각을 여러 맥락 속에서 넘나들면서 유동적으로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여성철학 연구는 아시아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하다. 배경은?
=한국의 신여성들은 (여성 문제에 대해) 관념적으로 굉장히 앞서 있었다. 허정숙(북한의 여성운동가·정치가, 1908~1991)이 공식 결혼을 7차례나 하는 등 삶의 형태도 자유로웠다. 구한말 민족주의 각성의 시기에 여자들도 각성했다. 남녀평등을 구국과 일치시켰다. 여성의식과 민족의식이 같이 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체적 위압의 상황에서 그런 대립의식을 키우는 (사회적) 맥락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여성의 이런 결집성을 일본 여성은 찾아내지 못했다. 중국은 남녀평등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여성의 시각이 철학적 사유 심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
=동의한다. 인간의 구체적 맥락성을 부여하는 여성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전에는 문제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문제로 보인다. 예컨대 가족은 우리 삶의 갈등과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 역사학자들은 이 문제를 다루어왔다. 하지만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가족에 대한 성찰이 거의 없다. 여성의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음식이나 퀼트 등의 수예품도 예술 작품의 관점에서 재규정할 수 있다. 여성주의 시각을 취하면 철학의 의제 설정이 달라진다.
글·사진/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대회서 문화차이 넘어 ‘열린 유대’ 토론할 것 -왜 여성철학자대회가 필요한가? =여성과 철학은 ‘둥근 사각형’과 같은 ‘형용모순’의 관계라는 편견이 플라톤 이후 굉장히 뿌리 깊다. 남성은 논리, 이성적이지만 여성은 감성적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철학적 수행에 있어 여자가 열등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전통이 남성에게 유리하게 형성되어 있어 여자는 전통을 향해 싸워야 한다. 동양철학에서도 소인과 여성은 같은 무리로 보았다. 음양사상에 입각한 남존여비의 기술을 읽게 되면 자기 인식에 있어 굉장한 분열을 초래한다. 자기 자신을 모독하는 텍스트를 읽게 되면 굉장한 소외감을 느낀다. 강한 여자는 이것을 견디고 일어 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것을 내면화하고 (남자들의 세계에) 끼워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년 7월 서울에서 세계의 여성 철학자들이 모여 ‘다문화주의와 여성주의’를 주제로 세계여성철학자대회를 연다. 사진은 지난 3월 여성의 날을 맞은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서울 홍익대학교 체육관에서 연 기념대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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