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소명출판)
강명관 교수, 자의적 해석으로 점철된 국문학사 비판
“김만중 ‘민족어문학’ 극히 일부…허균도 근대인 아니다”
“김만중 ‘민족어문학’ 극히 일부…허균도 근대인 아니다”
“민족과 근대라는 허깨비가 국문학사를 일그러뜨렸다.”
한문학자인 부산대 강명관 교수는 해방 이후 도남 조윤제의 〈국문학사〉로부터 이어지는 우리 문학사 기술을 ‘근대와 민족을 동원한 문학의 자유에 대한 폭력’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최근 펴낸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소명출판)에서 먼저 우리 국문학사의 민족과 근대 찾기가 쓸모없을뿐더러 유해하기까지 한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와의 접촉 이후 생겨난 상상의 소산이다. 하지만 국문학자들은 구석기 시대까지 소급해 우리 민족을 찾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는 것이다. 실제 조동일 교수의 〈한국문학통사〉는 우리 문학사를 구석기 시대까지 소급하고 있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민족의 의식을 가능한 한 올려 잡으려는 의식” 때문이라며 거기에는 민족 우월성을 천명하려는 민족주의가 내장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족 개념이 문학에 폭력을 가한 예로 국문소설 〈구운몽〉의 저자인 김만중이 지은 〈서포만필〉을 들었다. “서포는 〈서포만필〉의 단 한 곳에서 ‘민족어문학론’을 주장했으며 불교 언급도 극소수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민족어문학론’ 또는 탈주자학적 사유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이 작품에서 서포가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한문학이다. 당시 조선 문단에 막 수입되기 시작한 명대의 의고파·당송파·전겸익 등의 문학비평에 대해 소상히 언급했으나 후대의 문학사가들은 이 점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 역시 “폭력 희생자 가운데 하나”이다. 후세 국문학자들은 허균을 “순수한 국문학의 기원을 이루고 주자학을 비판한 근대인”으로 칭송했다. 이런 맥락에서 학자들은 허균 사상의 탈주자학적 사유와 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와 명말의 양명좌파(주자학에 대립하는 양명학파의 급진적 분파) 학자인 이탁오·원굉도를 대비한다. 하지만 강 교수는 허균이 오히려 양명좌파가 비판의 칼날을 세운 의고파(시가 등을 옛 형식에 맞춰 지어야 함을 강조한 학파)를 열렬히 추종했다고 반박했다.
강 교수는 또 ‘근대찾기의 폭력’도 꼼꼼히 따졌다. 그가 보기에 근대란 서구의 개념일 뿐이다. 서구의 것을 무리하게 대입해 근대 찾기에 골몰하다 보니 그 자의적 잣대에 따른 문학사의 왜곡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문학통사〉 등 여러 문학사들은 임병양란 이후인 조선 후기를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로 설정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조선 전기의 문학엔 주자학과 리 개념만 넘치고 후기에는 민중 혹은 탈주자학적 사유만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 교수는 주자학이란 국가 이념은 조선 후기인 18세기에야 조선을 유교국가로 완성시켰다고 본다. 주자학 정전인 〈주자대전〉이 중종 38년(1543)에야 비로소 간행되는 등 유교국가로의 전환이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춘향전〉은 18~19세기 전근대적 상황 속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유교적 복종 원리인 ‘열(烈)행’ 예찬일 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이 작품에서 민중저항이나 근대소설의 리얼리즘적 성격을 찾으려는 것은 “근대주의에 함몰된 결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지은이는 또 정약용의 시 작품 〈삼리〉 연작이 두보의 〈삼리〉와 미학적 차이가 없으며, 실학파 문학의 태두인 박지원의 상대주의나 인식론이 명말 학자인 원굉도 비평의 차용적 성격이 짙다면서 실학을 ‘내재적 발전론’의 성과로 보는 학계 인식에도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문학사는 민족이 아니라 인간을 주어로 삼는다. 과거 이 땅에 살았던 인간들이 쏟아낸 언어적 형상물을 검토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문학사 연구는 체계의 구축이 갖는 억압에서 더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고 마무리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강명관 교수가 보기에 〈춘향전〉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유교적 복종 원리인 ‘열(烈)행’ 예찬일 뿐이다. 민중저항 등 리얼리즘적 성격을 이 작품에서 찾는 것은 “근대주의에 함몰된 결과’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사진은 영화 〈춘향뎐〉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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