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노동자의 기억의 정치
‘혁명적 낭만주의’ 오늘날도 작동
노동자 과도한 박탈 땐 저항역할
노동자 과도한 박탈 땐 저항역할
41년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문혁)의 깃발이 올랐을 당시 이 나라의 노동자는 ‘영도계급’으로 불리었다.
노동자가 정치활동의 최일선에 있었고 기업 경영에도 참여했다. 현장 노동자와 관리자는 같은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실용개혁 노선의 시대인 오늘날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삶은 어떤가? 외자 도입을 중시하는 경제 발전 전략에 따라 영도자로서의 노동계급의 지위는 옛말이 되었다. 단체교섭의 무기인 파업권마저 빼앗겼다. 노동자 대부분은 종신고용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문혁 당시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억은 현 시점에서 어떤 문화·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필자로 참여한 〈중국 노동자의 기억의 정치〉(폴리테이아)는 문혁을 겪은 노동자 122명에 대한 구술면접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2005년 1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베이징, 상하이, 다롄, 충칭, 샹판, 정조우 등 6개 지역 7개 이상 국유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는 국내 학자 5명과 중국 학자 2명이 참여했다.
퉁신 베이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책에 실린 논문 ‘일상생활의 낭만화, 집단화’에서 신중국 제1세대 노동자들의 문혁 체험의 기억을 ‘권위에 도전하는 혁명적 낭만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문혁 당시 인쇄공장에서 일했던 한 구술 대상자는 당시 마오쩌둥 사상을 선전하던 도중 업무가 너무 피곤해 두 차례나 쓰러졌다고 답했다. 지은이는 이 구술 속에는 지금의 평범한 노동자들의 삶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상의 초월이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구술자들은 이런 ‘불가사의’한 사건들에 낭만적 의의를 부여했으며 일상의 삶에서 다시는 무슨 권위를 두려워한다거나 권위를 맹신하지 않았다.” 권위에 대한 신비감 해체와 문혁 이후 제기된 공산당에 대한 비판 등은 노동자들이 성찰 의식을 키우고 노동자로서 자기 신분을 재확인하도록 하는 구실을 했다고 퉁신 교수는 덧붙였다.
이런 집단의 기억은 이후 개혁 시대와 어떻게 맥이 닿을까?
지은이는 노동자들이 체득한 낭만적 정서는 그들이 개혁 개방의 길을 수용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이 ‘작은 집’을 희생하여 공화국이라는 ‘큰 집’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기를 소박하게 희망한 토대가 바로 이런 ‘낭만적 정서’와 ‘집단 의식’이라는 것이다.
퉁신 교수에 따르면 문혁 시대 사회적 경험의 역사적 형식은 이미 현대 중국에서 하나의 문화로 승화되었다. 그 문화의 핵심에는 권위를 무시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용기와 정신력이 놓여 있다. 때문에 시장화 시대에도 노동자들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없는 정신과 급진적인 태도는 연속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잠재적 집단행동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노동자들이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으나 과도한 박탈이 있을 때에는 행동 능력과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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