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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발묶인 ‘아시아 인권’ 시민연대로 풀자

등록 2007-10-03 20:50수정 2007-10-03 20:54

미얀마 사태로 본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현주소
미얀마 민주항쟁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엔은 특사를 파견했고 10년 전부터 경제제재에 나섰던 미국은 미얀마 군부지도자에 대한 비자발급을 중단했다. 한국 등 각국 시민사회도 다양한 형태로 이 나라의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 실천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지역 국가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미·유럽 등의 경제제재 동참 요구를 외면하는 등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이른바 나토(NO ACTION, TALK ONLY) 원칙만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미얀마 사태로 그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동아시아 민주·인권 체제의 한계와 발전전망을 학계 연구자들의 견해를 통해 살펴보았다.

개인보다 집단·경제 우선하는 ‘아시아적 가치론’이 문제
민주주의 성적표 중하위권…지역인권기구조차 없어
인권 ‘보편성’ 확대 바탕한 시민사회 협력·대안이 해법

아시아 국가 민주주의 순위
아시아 국가 민주주의 순위

■ 아시아 민주주의의 후진성=‘세계 경제의 실세’ 아시아의 민주주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해 세계 167개국에 매긴 민주주의 순위를 보면 아시아 17개국 가운데 일본(20위), 한국(31위), 대만(32위), 인도(35위)를 제외한 나머지 13개국은 모두 중하위권으로 밀려나 있다. 아시아는 지역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가간 인권기구를 가지지 못한 유일한 대륙이기도 하다. 북미나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조차도 지역 인권기구를 가지고 있다. 타이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권 국제비정부기구인 ‘포럼아시아’의 이성훈 사무총장은 “최근 남미도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있으나 아시아는 지난 10년새 타이와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에서 민주주의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현 단계를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의 대결”로 규정했다. ‘아시아적 가치’가 민주주의 지체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1990년대 초반 중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정부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인권론으로, 인권의 ‘보편성’을 서양의 강제적 개념으로 보고 아시아에서 권리 주체로서의 집단과 공동체의 우위, 인권에 대한 경제개발의 우위를 주장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1997년 ‘내정 불간섭주의’를 표방하면서 군정 체제인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거나 1993년 유엔 세계인권회의 준비회의에서 중국 등 아시아 국가 대표들이 인권의 ‘보편성’과 이에 근거한 국제 감시기구의 강화를 비판한 것도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적 가치론의 학문적 보편성에 대해 학자들은 회의적이다.

조정관 전남대 교수는 “60년대 서구 학계에서 아시아는 관개 농업 위주여서 거대한 규모의 수리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국가가 처음부터 필요했다”는 논지를 펼치며 아시아적 가치론을 정당화시켰으나, 이는 한·중·일 3개국에만 해당하는 논리였다고 지적했다. 동남·서남아시아에서는 마을과 부족 단위의 소규모 농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또 아시아 정부들이 개인보다는 집단과 공동체의 권리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중국과 타이 등 아시아 정부 대부분이 자국내에서 원주민이나 다양한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는 점도 모순으로 지적되어 왔다.

■ 인권의 ‘보편성’은 확대=‘아시아적 가치’ 논란에도 아시아에서 인권의 ‘보편성’ 개념은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다. 타이(1997), 인도네시아(1993), 말레이시아(1999) 등이 유엔 권고를 받아들여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했고, 이 분야의 시민단체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아시아 지역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대세는 흔들림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과 대만 등이 정치적 민주화로 이행한 뒤 진통을 겪기도 했으나 ‘지그재그’ 형태로 민주주의가 발전해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 아시아 민주·인권 체제 해법은? =연구자들은 아시아 인권 연대의 실질적 해법으로 시민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영도 〈사회비평〉 편집인은 “시민사회적 접근은 동아시아에서 일종의 정치적 트라우마(외상)로 작용하는 주권침해의 불안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인권문제와 관련해 지역협력의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상호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는 아세안 지역 시민단체의 압력으로 탄생한 ‘버마 문제를 생각하는 아시아 의원 연맹’(AIPCM)의 예를 들며, 국가 정책의 변화에는 시민연대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사회가 ‘인권과 함께 가는 주권’ 또는 ‘인권과 함께 가는 개발’ 논리를 더욱 정교화시키는 등 대안적 제도를 제시할 수 있을 때 국가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조정관 교수는 국가를 뛰어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출현에 주목했다. 그는 이번 미얀마 시위에서 인터넷이 나라 밖 사람들과의 연대 그리고 유엔을 통한 압력이 이뤄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면서 이를 미얀마 민주주의 희망에 대한 단초로 해석했다.

조희연 교수는 “현재 아시아는 자본에 의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이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힘에 의해 민주주의 인권의 최소 규범을 내포하는 사회적 아시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연구교수는 지역 공동체 형성에서의 인권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공동체 형성이 좀더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경제나 안보 중심이 아닌 정치 중심, 특히 인권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와 협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보편적 권리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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