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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도전은 철학·권력 결합한 위대한 정치인”

등록 2007-10-10 21:11

최상용 교수
최상용 교수
‘정치가 정도전’ 낸 최상용 교수
조선 건국의 설계자인 삼봉 정도전(1342~1398)에 대해 우리 역사학계는 그가 탁월한 주자학자나 경세가(나라를 다스리는 이)라는 틀에서 연구의 초점을 맞춰 왔다. 삼봉 연구의 서막을 연 1935년 이상백 교수의 <삼봉인물고>나 한영우 교수의 기념비적인 저서 <정도전 사상의 연구>(1973) 등이 그런 예이다. 한 교수 등은 14세기 불교이념의 대항마인 주자학으로 무장한 삼봉이 무인 이성계와 의기 투합해 역성혁명을 일으킨 뒤 주자학 이념을 제도화했다는 해석을 해왔다.

지난 8월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철학과 권력을 절묘하게 결합한 위대한 ‘현실정치인’으로서의 삼봉에 주목했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정치적인 것’을 빼고는 그의 진면목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까 그가 박홍규 고려대 교수와 함께 펴낸 <정치가 정도전>(까치)은 역사학계의 기존 삼봉 해석을 정치사상의 틀로 다시 들여다 본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삼봉
주자주의 바탕 권력투쟁 탁월
지적 정치공동체 실현
러시아혁명의 레닌과 견줄만

‘정치가 정도전’
‘정치가 정도전’
“삼봉은 주자주의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졌고 권력 투쟁도 탁월했으며 실제 지적인 정치공동체를 만들어냈습니다. 공산주의 이론가이자 러시아혁명을 이끈 레닌(1870~1924) 정도가 삼봉에 견줄 만 하다고 봅니다.” 그리스 철학을 가지고 로마 공화정을 이끈 키케로(기원전 106~43) 역시 확고한 철학에 권력을 결합한 탁월한 정치가였지만, 지적공동체를 만들지 못했다는 데서 삼봉에 처진다고 최 교수는 밝혔다.

플라톤 이후 서양정치사상의 정치가 자질론도 삼봉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플라톤은 바람직한 정치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체계적인 정치이념과 법 체계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주자학의 정치이념과 함께,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등의 저서로 이념의 제도화 프로그램을 제시한 삼봉이야말로 이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정치인에게 요구한 ‘법과 힘의 지배에 대한 지식과 실천’이나 막스 베버가 정치가의 결정적인 자질로 내세운 ‘열정, 책임감, 안목’도 삼봉을 그대로 설명하는 개념어들이다.

이런 평가에서 볼때 기존 학계의 삼봉 해석은 철학보다는 권력 추구 쪽에 무게 중심이 더 실렸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삼봉과 이성계의 첫 만남이 대표적인 예이다. 9년 동안의 유배와 유랑의 시련을 겪던 정도전은 고려 우왕 9년(1383)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함주막에서 만난다. 한영우 교수는 이성계를 찾아간 삼봉의 행위를 〈용비어천가〉의 기록 등을 들어 “혁명을 모의하기 위함”이라고 해석했다. 〈용비어천가〉에는 두 사람의 만남을 기록한 글에 이어 정도전은 이미 천명의 소재를 알고 따른 것이라는 글귀가 있다. 하지만 고대 이상국가인 하·은·주 삼대 이후의 혁명에 부정적인 주자의 사상을 따르고 있는 삼봉이 이성계와 첫 만남에서 반란에 의기투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지은이들의 생각이다. 문제의 글귀는 삼봉 졸기(죽음에 대한 기록)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았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함주막의 과거사는 개국 일등공신의 의식 속에서 재구성되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위화도 회군(1388년 7월) 이후 조선 개국(1392년 7월)까지 4년 동안에 대한 기존 학계의 ‘이성계의 왕위 찬탈 야심의 발현’이라는 해석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삼봉 등 신진사대부는 정몽주의 반격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기 전까지 혁명보다는 고려왕조의 중흥론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주자주의자에게 무력의 혁명노선은 ‘패술에 의한 찬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조준 등 당시 삼봉과 뜻을 같이한 사대부들의 상소에 등장하는 중흥을 뜻하는 용어나 이들이 추진했던 전제개혁 등이 중흥 이념의 프리즘으로 해석됐다.

이들은 정도전이 혁명을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력이 아니라 왕명을 활용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왕명으로 반대파를 몰아낸 뒤 왕을 고립시켜서 스스로 물러나게끔 유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는 정몽주의 반격과 이어진 이방원의 정몽주 살해로 무위로 끝났다.

정몽주 피살 이후 조선 왕조 개국 때까지 3개월 동안 “왕조 교체작업에서 소외당했던” 삼봉은 권력찬탈로 탄생한 새 왕조에 출사했다. 이는 순수 주자주의만이 아니라 권력 지향성을 뿌리 깊게 체득하고 있던 정치인 삼봉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이때 정도전은 자신의 출사를 불의로 투항하는 것이 아닌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의미를부여했다. 그리고 주자가 말하는 정통왕조, 즉 지속되는 왕조를 만들기 위한 이념의 제도화에 힘을 쏟았다. 이는 또 주자주의자의 이상향인 ‘고대 이상국가’로 향하는 행로이기도 하다.

정치사상 전공자들의 이런 해석에 역사학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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